사람을 통해 지평이 넓어진다는 것

진료실은 늘 내 계획을 무너뜨리며 시작된다

by 조자연

나는 늘 진료 시작 1시간 전에 출근을 한다.


그리고 오늘,

어떤 진료를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보낼지

대충 그려놓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늘 내 계획의 바깥에서 온다.


그 사람의 사정은

예상보다 복잡하고, 예상보다 인간적이다.


나는 내 세계가 작은 사람이다.


어쩌면 사회가 정해준 루트를 따라 직업생활을 시작했고,

혼자 결정하고 판단하며 살아온 세월이

함께 일하며 살아온 기간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이 익숙하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덜 쓰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가능하면 내 삶의 반경을 단단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쪽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작은 내 세계에 갇혀 있기를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내가,

사람을 매일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열려있는 문으로

매일 새로운 '처음'이 들어온다.


가끔은 그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원래 낯선 관계와 예측 불가능한 대화를 힘들어하는 사람인데,

매일 누군가를 맞이하고 이야기를 듣고

내 손의 감각으로 그 사람의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잠시 맡아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좀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치료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을 만나면

나의 좁은 세계가 흔들린다.


진료실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종류의 삶을 본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버티는 사람을 보고,

내가 쉽게 판단했던 감정의 무게를 다시 배우고,

내가 '이래야 한다'라고 단정했던 삶의 규칙이

사람 앞에서 얼마나 자주 무너지는지도 본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작은 지평 하나가 열린다.


사람을 통해 지평이 넓어진다는 건

어쩌면 타인의 삶을 잠깐 통과해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치료자이지만

사실은 매일 배우는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의 몸을 알아가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결을 함께 만진다.


아픈 곳은 근육과 관절일 수 있지만,

그 뒤에는 늘 삶이 있고, 관계가 있고,

말하지 못한 감정의 습관도 있다.


그걸 매일 보다 보면

나는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된다.


쉽게 냉소할 수 없게 된다.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이 일은

내게 '사람을 만나는 일'인 동시에

내 세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히는 훈련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혼자 있고 싶고,

조용히 숨고 싶고,

내 세계를 단단하게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진료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계획을 무너뜨려가며

내가 그 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게 한다.


어쩌면 나는

그걸 알면서도 이 일을 택했는지 모른다.


사람을 통해

내가 조금은 덜 작아지는 삶.

내가 조금은 더 넓어지는 삶.


진료실은 오늘도

내 계획을 무너뜨리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무너짐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내 세계 밖으로 한 걸음 나가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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