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을 피한 예의, 곁눈질로 던져진 조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판하는 말,
“나만 고치면 여기 올 사람 많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말은
교묘하게 자랑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기대를 걸고 꺼낸,
애처로운 카드에 가깝다.
아마 그는 그런 말을
여러 곳에서,
여러 번,
해봤을 것이다.
정중한 척, 가능성을 암시하며
자신을 유익한 사람처럼 포장하지만
그 안엔 누군가라도
자신을 특별하게 받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말은
정작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고,
마음 깊은 곳을 은근히 긁고 들어온다.
한쪽에선 이런 생각이 든다.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다뤄지거나
‘또 그런 환자’로 여겨졌던 기억.
그런 경험이 쌓이면,
이번에도 또 실망할까 봐
기대와 경계를 동시에 품게 된다.
그런 사람이
착해 보이는 의사,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건넨다.
“다른 병원도 많이 다녀봤는데,
뭐... 다들 비슷하더라고요.
여긴 좀 잘한다고 해서요.”
말은 조심스럽지만
그 안에는
극진한 대우를 받아내고 싶은 마음,
이곳만큼은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한데 얽혀 있다.
“나만 고치면 여기 올 사람 많아.”
이 말은 꼭 시선을 비껴 건네진다.
눈을 맞추지 않고, 정면을 피한 채
살짝 곁눈질로 던지는 말.
나는 그 태도가 불편하다.
애초에 관계가 아니라
정중함을 입은 우위 확보의 말,
그 말은 나를 배려하는 척하면서,
실은 '당신은 나를 더 잘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남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말에는 또 다른 결이 있다.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마음,
‘당신이 잘만 하면, 나도 잘 될 수 있어요’라는 기대,
그리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여지를 조용히 남겨두는 계산.
그런데
진짜 치료는
책임을 위임하는 게 아니라
함께 회복을 감당해 보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진짜 힘든 사람은 ‘살고 싶다.’ 고 하지,
‘나 한 번 살려봐요.’ 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 차이는 누구나 감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의사가 착해 보이니,
이번만큼은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자신을 최대한 신경 써주길 바라는 마음.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질까 봐,
미리 꺼내보는 마음.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죄책감도 들고, 피로도 밀려온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의 태도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같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
어디에서도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던 마음이
어딘가에 한 번은 기대보고 싶었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나는
나를 그 도구로 삼고 싶어 하는 태도에는
선명하게 선을 긋고 싶다.
착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존을 통째로 맡겨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나는 그 책임을 대신 질 수는 없다.
사람마다 원하는 '특별한 대우'의 모양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저마다의 힘듦을 가지고 찾아오는 그 마음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그 특별함을 만들어가는 건
의사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건
결국, 진심 어린 시선과 손길뿐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고친다는 말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말입니다.
"저는, 함께 걸을 준비가 된 사람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