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마음은 자주 얼어붙는다.

서운함과 단단함 사이

by 조자연


“그 원장 아가씨 있어요?”


할머니는 문을 열자마자 그렇게 물으신다.

다른 환자들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처음에는 우연히

우리 한의원을 찾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는
동네를 몇 바퀴나 돌다가
겨우겨우 다시 찾아오셨다고 했다.


80대의 작고 여린 몸,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땐
늘 손에 사탕 하나를 꼭 쥐고 계셨다.


그런 분이셨다.


그 사탕 하나를 건넬 때,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정,

나를 떠올린 시간,

올 때마다 준비해 온 정성이 담겨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할머니는
그날따라 너무 힘드셨는지
갑자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왜 이리 안 낫는 거야, 나 정말 아파 죽겠어."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에선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너무 만만한가?"
"내가 너무 친절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들이 밀려왔다.


사실 나는
이런 조그만 불만에도

금세 마음이 차가워지는 사람이다.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얼음처럼 굳는 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의사가 이래도 되는 걸까?


의사가 환자의 말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려도 되는 건가?


나는 자격이 없나?


내가 실력이 없어서,
그 빈자리를 마음으로 채우려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자기 비난이
얼음처럼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마치,
한 사람이 던진 작은 말 한마디가
내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서운한 마음이 지나가면,
조심스레 이런 생각도 떠오른다.


그만큼 나를 ‘편하게’ 느꼈던 건 아닐까.


아파서 어디에도 마음 둘 데 없던 날,
여기서는 그 작은 짜증을 꺼낼 수 있다고
느꼈던 건 아닐까.


그 사탕 한 알,
그 동네 몇 바퀴,
그 ‘원장 아가씨’라는 말 안에
내가 몰랐던 신뢰가 있었던 건 아닐까.


진료실에 앉아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너무 자주 흔들린다.
나는 또 자주 얼어붙는다.


때로 짜증을 내도
마음속에서 흔쾌히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환자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오늘은

문을 열고 나가는
굽은 등의 할머니 뒷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오늘은 조금 덜 아프셨으면,
그리고 덜 외로우셨으면.


그래서 내일은
“원장 아가씨, 어제는 좀 괜찮았어.”

그렇게 웃는 얼굴로 다시 오시길.




마음은 자꾸 얼었다 녹고,
녹았다가 또 얼어붙는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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