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싫었던 건, 내 마음 때문이었다.
나답지 않게,
어딘가 날이 선 글을 써놓고 나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그 찝찝한 마음이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글이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글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그 글 안에 담긴 감정의 방향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을 향해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고치면 여기 올 사람 많아"
겉으로는 의뢰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힘의 균형이 깨진
어떤 감정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니까, 당신은 잘해야 해요.'
라는 조용한 우위 확보.
정중함을 입고 있지만
나를 시험하고 있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무책임한 태도에 예민하다.
허위도 과시도,
결국 무책임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책임을 너무 쉽게 넘기려 할 때, 나는 화가 났다.
그 말을 꺼내는 환자들의 태도,
그 말속에 숨어 있는 기대와 압박,
그리고 그 말이 주는 피로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 글이 마음속에 남아 떠나지 않았다.
왜 나는 그 말을 그렇게 불편하게 느꼈을까.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 말 자체가 왜 자꾸 내 마음을 건드릴까.
오늘에서야 조심스레,
그 질문에 답을 찾은 것 같다.
그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주하게 된 ‘내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무책임한 태도가 싫다.
모든 걸 남에게 떠넘기고,
자기 몫의 감정도 돌보지 않은 채
그저 너가 잘 좀 해보라고 말하는 태도.
그게 싫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렵다.
누군가의 몸을,
누군가의 회복을,
심지어 그날의 감정까지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다 괜찮은 척,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척,
힘들다는 말도 꾹꾹 눌러가며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
“나만 고치면 여기 올 사람 많아” 는
내가 애써 쌓아 올린 그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 말은,
‘당신은 나를 고쳐야 할 책임이 있어요’
라는 메시지처럼 들렸고,
나는 그 무게를 이미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책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완벽하게 하려고 했고
더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모두 무너질까 봐 늘 긴장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랐으면서도
또 누군가가 너무 쉽게 그 책임을 나눠달라고 할 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나만 고치면 여기 올 사람 많아.'
내가 느낄 때 그 안에는
묘한 책임회피와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가
한꺼번에 겹쳐 있었던 것이다.
그 글은 사실,
누군가를 향한 비판이 아니라
내 마음을 향한 조용한 비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나서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던 밤을 지나
나는 이제 알았다.
그 말이 싫었던 건,
그 말에 반응한 내 안의 상처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그 상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바라보려 한다.
책임이 무거운 이유는,
그걸 끝까지 내 몫으로만 붙잡고 있으려는 나 때문이었다.
이제는 조금씩 배우려 한다.
누군가의 삶과 회복을 함께하되,
그 모든 걸 대신 짊어지진 않아도 된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몫과,
내가 넘어서지 않아야 할 선을
더 잘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말이 내 마음을 건드렸던 그 지점을
비로소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