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그런 힘이 있다
진료실엔 가끔 툭툭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온다.
대답은 짧고, 표정은 굳어 있고,
호의에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일상에서였다면,
나는 그들과 가까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아직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나의 가장 깊은 두려움 때문에.
하지만 진료실이라는 공간은 조금 다르다.
이미 이 곳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조용한 구조요청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사람이 먼저 다가오지 않아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다.
처음에는 나에 대한 경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안다.
그들은 단지 조심스러운 것이다.
마음의 문을 너무 쉽게 열었다가 다친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툭툭거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환자에게는
처음부터 다정하게 굴지 않는다.
일부러 친절을 더하지도 않고,
마음을 끌어오려 애쓰지도 않는다.
유난스러운 반응은 오히려 거리를 만든다.
그저 조용히,
그가 어떤 온도를 좋아하는지,
어느 자리를 편해하는지,
어떤 자세가 편안한지,
차곡차곡 기억해둔다.
그렇게 몇 번의 진료가 지나고,
하나씩, 소소하고 조용하게 살펴줄 수 있을 무렵
어느 날,
툭툭하던 얼굴의 그 사람은 말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기억하세요?”
약간은 어색하게, 하지만 분명히 부드러워진 말투로
그리고 아주 잠깐,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단히 잠겨 있던 마음이
툭,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이 나는 너무 좋다.
사람의 마음이 톡 하고 열리는 바로 그 찰나.
마치 나팔꽃 봉우리 속에서
숨겨져 있던 씨앗들이
작은 '톡'소리와 함께 튀어 나오는 것 같은 순간.
한 번 마음이 열린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말투도 표정도,
그리고 우리의 거리도.
그리고 나는,
매 순간 진심이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해
거짓으로 말하지 않았고,
과장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억지로 다정한 척 한 적 없고,
마음을 사기 위해 연기를 한 적도 없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
진심이 통한다는 느낌.
그도, 나도
아직 그런 힘이 남아 있다는 표식.
그런 순간들이 나를
지금도 이 자리에 기꺼이 머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