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지 않지만 진짜였던 세계
한의사 동료들과 모이면
공통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진단이 너무 주관적이야."
"표준화된 치료 체계가 없어."
"경험에만 의존하는 게 불안해."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도 좀 더 명확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말들이 내 안에서 자꾸만 튕겨 나왔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꾸
“정말 그래야만 할까?”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왜 이 일을 선택했을까?
수학, 물리를 좋아하던 내가,
전형적인 이과생이던 내가,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내가,
왜 이 모호한,
기준도 없고, 해석은 너무 많은 세계로 들어왔을까?
돌이켜보면,
그 모호함이 나를 살렸던 건 아닐까.
한의학은 정답이 없었다.
정확한 수치보다 흐름을 읽는 감각,
분류보다 기운의 변화를 느끼는 섬세함,
정형화보다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살아 있는 진단.
어쩌면 나는
그 유동성과 유기성 속에
내 감정을, 내 존재를 더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숨어 있되,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느끼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나는 숫자보다
사람을 기억했고,
매뉴얼보다
환자의 마음과 몸을 느끼며 치료했다.
그게 비표준적인 방식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틀 안에 머물고 싶었다.
나는 늘, 정확한 걸 좋아하는 사람인 척 했다.
틀릴까봐, 이상한 사람 될까봐.
그런데 정말로 나는,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계에
오래 머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안에서는
감정도, 직관도, 사랑도
진단과 치료의 일부가 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흐름을 따라 만난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흐름 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선택하겠다.
그게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치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과 직관이 살아 있는 이 세계를
내가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곳으로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