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삶의 뒷면을 마주하는 곳

사람을 만나는 게 서툰 내가 가장 많은 삶을 마주하는 공간에 대해

by 조자연


이제 막 태어난 아기부터, 백세가 다 되어가는 어르신까지.

한의원은 참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사람으로서,
매일 진료실에서 인생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마주한다.




아기가 오면 귀엽다.
작은 손발을 오물오물 움직이고,
울다가도 한순간 빙긋 웃는 표정을 보면 마음이 녹는다.


그런데 정작 내 눈에 더 많이 들어오는 건 아기보다 그 엄마, 아빠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으면서, 혹은

하루 종일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서

얼마나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했는지가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


진료실에서는 그런 게 보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가 더 걱정하는 것 같고,

내가 더 한숨 쉬는 것 같다.

그 시간이 행복하면서도 또 얼마나 길고 힘들지,



우리 엄마 또래의 환자가 오면, 엄마 생각이 난다.


살아계셨다면 딱 이만큼의 나이셨을 텐데,

같이 늙어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 엄마가 이렇게 고울 때 돌아가셨나.

이렇게 젊을 때... 돌아가셨구나.
그런 생각이 불쑥 밀려오기도 한다.



80대, 90대 어르신들이 들어오실 땐
나도 저렇게 무너지지 않고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종종 농담처럼 말한다.
“저는 120살까지 사는 게 목표예요.”


그러면 "나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가족들 고생시킬까 봐." 하신다.

그 시간의 끝에서 나는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게 진료실은 세대의 시간을 마주하는 공간이 된다.



나는 사람을 사귀는 것에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있을 곳이 진료실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사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을 때가 있다.


가령, 나보다 나이대가 좀 높은 여성들이
삶에 대한 찐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 듣다가
'이런 이야기 일찍 좀 해주시지.' 하고 농담할 때가 있다.


그만큼 그 이야기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어떤 날은 절망적이기까지 해서 조금 무섭고, 또 안타깝다.


조금만 이야기해도 바로 이해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럴 땐 슬픈 이야기에도 서로 눈을 찡긋거리며 웃게 된다.


젊은 청춘들의 힘든 이야기엔 그저 안타깝기도 하다.

너무 일찍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 조그만 어깨가 짊어진 무게가 덜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료실은 그런 이야기들이 조용히, 천천히 흘러나오는 곳이다.


유명한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늘 당당하고 활기차 보이던 사람들이
막상 진료실에 들어서면 너무 여리고 순하고

또, 상처받은 아기새 같아서
내가 먼저 놀랄 때가 많다.


또 어떤 분은
돈도, 명예도, 가족도 남부러울 것 없이 지내던 분인데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으로
“지금은 다 소용없어요”라고 말씀하신다.


부부가 서로를 알뜰히 챙기고 살피는 모습을 보면
괜히 부러워질 때가 있다.

저런 관계는 어떻게 쌓이는 건지.

한 번도 쌓아보지 못한 관계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진료실에 있다 보면,

정말 중요한 순간이 온다.


환자들이 갑자기 “사실은 제가요...” 하는 때


나는 그럴 때

자연스럽게 몸을 조금 더 앞으로 기울이고

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건 단순한 병 얘기가 아니라,
어디 가서 하지 못했던 말,
자기 신상에서 중요한 이야기,
마음을 결정짓는 이야기들이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이다.


그건 진료라기보다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에 더 가깝다.


진료실은 겉이 아니라 속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별로 없는 공간.

삶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을 마주하는 곳.


이곳에서 나는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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