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보다 그리움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20대.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밥벌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불안이 줄곧 나를 집어삼키곤 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또 다른 불안이 밀려왔다.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
‘이 돈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걸까?’
그때 나는 내 쓰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내 존재를 믿지 못한 채.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 조금은 다르다.
무거운 책임이 따르고,
가끔은 지치고 무력해지지만,
가장 행복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항상 일할 때 온다.
며칠 전, 진료실에서 한 어르신이 말했다.
짧지만 많은 것이 담겨 묵직한 한마디.
“일할 때가 좋았어.”
그 안에는 시간, 외로움, 의미, 그리고 존재의 흔적
같은 게 다 들어 있었다.
진료실에 있다 보면,
나이에 따라 ‘일’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낀다.
70~80대 환자들은
일할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그땐 누군가에게 필요했고, 가야할 곳이 있었고,
자신의 움직임이 의미로 이어졌던 시절이니까.
그만큼 힘들었지만 젊었던 시절이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그때의 자신이 견고하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훨씬 분명하고, 단단한 나로 살아갔던 시기.
그래서 그들은 '일'을 떠올리며, 사실은 '그때의 나'를 그리워한다.
60대 환자들은
아직도 습관처럼 눈을 뜬다.
몸은 여전히 예전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 새로운 일을 찾거나 새로이 하고 있고,
몸과 마음이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바쁘게 살아온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허무함을 느끼거나, 정체성이 흔들린다.
40~50대에게는
일은 의미와 고통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가장 괴롭지만 가장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퇴사를 고민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도 동시에 고민하는 시기.
누군가는 승진을, 누군가는 퇴사를 생각한다.
30대 초반, 혹은 갓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일에 어울릴까?'
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아직은 쓰임보다 자격이 중요한 시기.
일 자체보다 ‘이 일을 하는 나’가 괜찮은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몇 시기를 지나가며
이제야 조금은
일하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나에게 일이란,
책임이자 쓰임이고,
가장 기쁜 순간이기도 하며
가장 괴로운 순간도 함께 주는 것.
언젠가 나도,
그 말을 하게 될까.
“일할 때가 좋았어.”
그 말 속에
후회보다 그리움이 담겨 있기를.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담겨 있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내 존재의 흔적을 한 줄 더 새기듯, 그렇게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