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결을 알아본다는 것

한의사로 살아오며, 내가 얻은 능력에 대하여

by 조자연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안다."


내가 학생일 때

나보다 한참 위 학번 선배가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에이, 후배들 앞에서 과장하는 거겠지.'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도 그런 능력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사람을 잘 몰랐다.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몰라서 어려웠고,

그래서 피하고 싶었다.


그러니 그걸 아는 사람의 눈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초보 한의사 시절에는

그저 환자의 증상을 따라가고,

증상을 설명하며, 처방을 내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진료의 전부였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나도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문이 열리고,
걸음걸이, 표정, 자세, 말의 톤과 속도-
그 짧은 순간 안에 담긴 무언가를

읽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판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누군가를 구분하거나 단정짓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지 어떤 치료와 처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우리 둘 다 편해질 수 있을지를 살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직감은 언제나 맞는 건 아니다.

종종 어긋나기도 하고,

한참을 돌아서야 겨우 맞닿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의 나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제는 진료실 밖에서도

사람의 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나와 아주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말을 조심히 꺼내고,
자신의 고통을 쉽게 말하지 않으며,
혼자 감당하는 데 익숙한 사람.


겉으로는 따뜻하고 예의 바르지만,
속은 닫혀 있고,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쉽게 열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딱 나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결이 느껴진다.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이고,

누구에게 기대는 건 약한 거라고 믿으며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몸과 말 사이에 배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조금 더 편하게 지내보세요."


그러면 이런 답이 돌아온다.

.

"네, 그래볼게요."

.

.

.

.

.


다른 환자들은 이 말을 들으면


"그러고 싶긴 한데요...

제가 또 성격이...

애들 때문에...

아무래도 직종이..."

이런 식의 설명이나 변명이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다르다.


마음을 다해 말을 건네도,

변명도, 상황설명도, 더 이상의 이야기도 없다.


그 짧은 말에 오히려 마음의 두께가 느껴진다.

더 보여주지 않으려는 단단한 경계가 어른거린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그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 방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건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가 정말 편해질 수 있을까?
'나조차도 그러지 못하는데...'


'어쩌면 그래서,

내가 건넨 그 말이,

정작 그 사람의 마음에는 닿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한참 동안 남는다.


그리고 문득,

이런 마음을 여는 건

나처럼 조심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가볍게 툭- 말을 던질 수 있는 사람,

망설이지 않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들의 마음을 더 쉽게 열게 할지도 모른다.




진료실은 증상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되는 공간이고,

진료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시도를 이어가는 이 자리에서,

조금씩 사람을 배우고,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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