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치료자의 책임과 환자의 권리 사이에서

by 조자연

'어디까지가 내가 결정할 일이고,

어디부터는 환자의 선택이어야 할까'


진료실에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는 15년째 진료를 하고 있는 한의사다.


몸의 신호를 분석하고,

여러 치료 방법을 떠올리며,

최선의 조합을 찾는 일을 한다.


어떤 증상에는 어떤 치료가

- 평균적으로 -

잘 듣는지 알고 있고,


효율적인 경로도,

시간 단축을 위한 방법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다.


"이 방법이, 이 사람에게도 최선일까?"


사람의 몸은 평균값이 아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치료의 기준도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빠른 효과가 가장 중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더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매일 약을 챙겨 먹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일상조차 버겁다.


'무엇이 가장 불편한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치료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이 모든 기준은 환자마다 다르다.


그러니 '정답'은 없다.


며칠 전,

환자와의 대화 중 이런 일이 있었다.


"원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저는 잘 몰라서요."

그 말에 나는 순간 망설였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이 사람의 무게를 덜어주는 걸까,
아니면 이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걸까?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 접수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치료의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습니다.

치료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매일 진료실에서

같은 병에도 다른 선택을 하는 환자들을 만나는 나에게

"치료의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다."는 그 문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 문구를 거기서 봤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대형병원 접수대에서

환자에게 이렇게 직접 '결정권'을

언급하는 문구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인간의 자기 결정권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이제 현대 의학도,

치료에 있어

하나의 정답보다

'각자의 해답'을 찾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환자들은 종종 불안을 안고 온다.
'내가 뭘 알아요,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괜히 내가 선택했다가 안 좋아지면 어쩌죠'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환자의 결정을 돕는 것과,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의 차이를 자주 되새긴다.


"지금 드릴 수 있는 선택지는 이렇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과 단점은 각각 이런데,
어떤 쪽이 더 나으실까요?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물어보는 것이,

나는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존중의 표현이라고 믿는다.


치료자는 늘 환자의 몸을 다루지만,
그 몸은 누구의 것도 아닌,

그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자신의 불편을 가장 잘 알고,
자신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선택 앞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안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곁에 서 있는 것이다.




치료자로서 나는

여러 치료법의 효과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중 진짜 최선은

그저 효과가 좋은 치료가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일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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