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창[窓]
진료실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야기에는 정답이 없고, 모든 이야기가 다 맞는 것 같다.
같은 사건을 다른 방향에서 듣게 될 때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잘 아는 사이지만,
각자 따로 진료를 받으러 온다.
서로가 내게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혹은 알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쪽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른 시간,
다른 쪽이 같은 사건에 대한 자신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도 너무나 그럴듯했고,
그 속상함도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나는 놀라움으로 두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사건을 이렇게 다르게 느끼고,
이렇게 정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심지어는
그 두 사람이 같은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로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그 두 이야기가 다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나고 나서야
'아, 그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면이었구나'하고
퍼즐이 맞춰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왜 이토록 양쪽 모두의 말을 이해하게 될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주관이 없는 사람일까?'
' 어쩌면 정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일까?'
하지만 세상 일이란 원래 그랬다.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감정, 누군가의 해석이
어떤 하나의 틀로는 담기지 않았다.
그게,
내가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진실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누군가의 편을 들 수가 없게 된다.
다만, 그 마음들에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그런 진실을 수없이 접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에서
그 한쪽 시야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와의 갈등 속에서
내 입장만이 유일한 정답처럼 느껴지고,
억울함이 앞설 땐
다른 사람의 진심은 좀처럼 떠올려지지 않는다.
진료실에서는 그렇게도 잘 보이던
'이야기의 다른 면'이
내 삶에서는 너무 늦게 보인다.
조금씩, 나도
나의 이야기의 다른 면을
한 발 물러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은 채 오늘도
내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