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병이 될 때 (3_2)

감정과 순환편

by 조자연

막힌 것은 혈관만이 아니었다.




감정이 순환장애가 될 때 - 그 기전의 이야기



순환이 잘 안 되는 느낌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다.

머리가 무겁고, 손발이 차고, 뭔가 몸이 뻐근하거나 붓는 날.


이럴 때 우리는 날씨 탓, 운동 부족, 혈관 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아주 자주, 그 원인의 시작점은 감정이다.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생리 반응이다.


기쁨과 분노, 불안과 슬픔은 모두

신경계, 혈관계, 근육계를 통해 몸에 실제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감정이 반복되거나 오래 억눌릴 경우,

그 영향은 ‘순환 장애’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감정이 기혈의 흐름을 조절한다고 본다.

감정이 순조롭게 조절되면 기혈도 순환이 잘 된다.


하지만 감정이 오래 머무르거나 갑작스럽게 치솟거나,

터지지 못하고 안에 고이면, 기혈도 막히고 끊기고 쌓이게 된다.


특히 분노는 간기를 울체시켜 기혈의 순환을 막고,

우울은 기의 흐름을 정체시키며,

불안은 심장과 맥의 리듬을 혼란시킨다.

이는 곧 전신 혈류와 말초 순환의 저하로 이어진다.


현대의학적으로도 감정과 순환은 명확히 연결된다.

감정 자극 → 자율신경계 반응 → 말초 혈관 수축/이완 변화 → 심박수/심박변이도 변화 → 순환 장애.

감정은 단순히 심리적인 상태로 그치지 않는다.

감정은 곧 생리적인 반응이며, 그 변화는 전신의 순환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각 감정은 특정한 장기를 자극하고, 그 장기를 통해 기혈의 흐름에 변화를 일으킨다.


불안은 우리 몸을 끊임없는 경계 상태로 몰아넣는다.
늘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이 심리적 긴장은,

실제로 심장의 박동 리듬과 혈류 분포를 변화시킨다.

불안이 심장의 기운을 흔들면

심박의 리듬이 깨지고, 심박변이도(HRV)가 낮아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교감신경이 항진되고,

말초 혈관은 수축하며, 손발은 차가워지고 얼굴은 창백해진다.

몸은 마치 전투 태세처럼,

피를 말초와 피부로 보내는 대신

중심부 즉, 뇌와 심장으로 집중시키게 된다.

그 결과, 혈류의 재분배 현상이 일어나 표면 혈류는 줄고

중심 장기로만 혈액이 몰린다.
심장은 빨리 뛰지만, 그 빠른 박동은 혈액을 온전히 퍼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전신의 모세혈관 순환과 림프 흐름은 점점 더 정체된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혈관은 항상 긴장된 상태로 굳어지고,
혈액의 점도와 응집력도 함께 높아지며,
결국 “순환이 안 되는 몸”,

아무리 따뜻하게 입어도 온기가 퍼지지 않는 몸이 되어간다.

그 막힌 흐름은 단순한 혈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경계가 해제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다.


분노는 간기의 흐름을 막는다.

간은 온몸의 혈류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는데,

이 간기가 정체되면 혈류의 조절 기능이 무너지며 상체 쪽으로 열이 몰리게 된다.

그 결과, 얼굴이 붉어지거나 두통이 생기고, 눈이 충혈되며,

여성의 경우 생리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슬픔은 폐의 기운을 위축시킨다.

폐는 기를 받아들이고 산소를 순환시키는 장기인데,

이 기능이 약해지면 조직 대사 능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로 림프 순환이 정체된다.

몸속 노폐물이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으면서,

전신 피로감이나 부종이 생기기 쉬운 상태가 된다.


걱정과 우울은 비장의 기운을 정체시킨다.

비장은 소화기계를 총괄하는 장기로,

비기가 정체되면 위장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든다.

그 결과, 배가 자주 차고 더부룩하거나,

식욕이 떨어지고, 복부가 쉽게 붓는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복부 냉감과 부종은 우울이나 만성 걱정이 오래 지속될 때 자주 관찰되는 특징이다.


놀람은 신체의 자율신경계를 급격히 자극한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나 공포는 교감신경을 급상승시키며,

혈압이 갑자기 상승하거나 급락한다.

이 과정에서 어지럼증이나 가슴 두근거림, 식은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순환계가 감정 자극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감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혈류를 조절하고,

특정 장기의 기능을 통해 전신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감정이 곧 순환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생리적인 현실이다.


결국, 순환이 안 되는 몸은 종종 감정의 고인 자국이다.


흘러야 할 감정이 멈춰 있거나, 너무 오래 머물거나,

너무 많이 몰려온 자리에는 기와 혈이 함께 막혀 있다.


순환을 원한다면, 먼저 내 안의 감정을 바라보고, 풀어내야 한다.


감정을 흐르게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깊은 곳의 순환 치료다.




다음부터는

각론으로

'감정이 나타내는 신체적 반응'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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