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조금,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지금,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되는 연습

by 조자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혹시 ‘내성적이다’라는 이유로
받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건 아닐까?


먼저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내 마음을 꺼내 보이지도 않으면서,


심지어는

누가 먼저 다가와도

뒤로 물러서면서


왜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느냐고,
왜 내 손을 잡아주지 않느냐고
혼자 속으로 서운해하고, 원망만 했다.


나는 심지어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내성적이라서’라는 이유로
더 가까워지기를 망설여왔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건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두려움'에 가까웠다.


그 사람의 거절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필요 없는 존재일까 봐 무서운 마음.
아무 짐도 되지 않고 싶은 마음.
어디서든 ‘밥값은 해야 한다’는 강박.


언제부터 안가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만
존재해도 괜찮다고 믿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사람.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겨우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뭐든 내가 더 많이 줘야
비로소 관계 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


받는 게 서툴고, 기대는 건 더 어색했다.

언제나 내가 먼저, 그리고 더 많이 건네야

덜 불안했다.


그렇게 살면서 나는 늘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를 먼저 계산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간다면,

내가 먼저 내민 손길이,
그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니라면,
나는 또 내가 필요한 사람을 향해
방향을 돌리면 되는 거라고.


그런데

이 생각조차 결국은
‘나는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필요함’으로만 존재를 증명하려는 태도.


그게 내가 가진 방식의 거의 전부였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


더 이상 '쓸모'로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쓰이지 않아도,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는 여전히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회복하는

전형적인 '내향형'이지만,


이제 조금은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억지로 활발해지거나
세상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는 외향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더 가볍게 꺼내어 건넬 수 있는 사람.


내가 가진 것을

숨기지 않고 나눌 수 있다는 믿음.


그걸 건넬 수 있는 용기.


그런 표현력과 개방성을 나는 지금,
조심스럽게 배우는 중이다.




한때 스스로 붙인 '내성적'이라는 말은

숨는 나를 정당화해 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가두는 작은 알껍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젠 그 껍질을 깨고 나와

더 다정하게, 더 투명하게, 더 용기 있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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