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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쌤 Nov 30. 2017

도보여행의 시작

일상 속 여행

걷기 여행을 처음 시작한 것은

고3 여름.

방학이었지만, 

거의 모든 기간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으로 보내고

그 끝에 주어진 단 3일간의 휴가기간이었다.


이제는 국민 베스트셀러인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에 

푹 빠져있던 나는,

"감은사 탑을 보겠다!"

는 참 단순한 생각만으로

혼자 경주행 버스에 올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_유홍준 교수

경주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타고 박물관과 안압지, 

불국사를 둘러본 나는...

최종 목적지인 감은사지로 가기 위한

버스편을 알아보던 중.

보문단지 앞 삼거리에서

한 도로표지판을 발견했다.


감포 20km


"그래.. 그 까짓 20키로... 걷자."

운전을 해봤을리도 없고,

손에는 스마트폰은 커녕

지도 한장 없던 까까머리 고3에게,

20km 정도는,

축구로 다져진 두 다리가 충분히 감당할

거리감이라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게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지 몰랐다.

산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인적이 뜸한데다,

가끔 트럭이나 한대씩 지나다니는 도로변을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른체

물 한병없이 걸어야만 했었다.

산 중턱에서 죽겠다 싶었는지,

결국 나는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기로 했다.

요즘 같아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히치하이킹

을 인생 처음으로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첫번째, 얻어탄 갤로퍼는 운전자가 스님이셨다.

차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고3인 나를 크게 격려해주셨고..

감은사탑을 보러간다는 내 얘기에,

"그럼 여기도 한번 들렀다 가게~"

이러시면서, 나를 기림사라는 절에 내려주셨다.

정말 감사했지만, 

결국 내 여정은 5km가 더 늘어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다.

머릿속은 하얗다.

그랬더니...

나를 둘러싼 풍경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 들판, 개천, 절 풍경, 시골 사람들...

걷고 걷다가,

길가에 잠시 앉았다가를 반복하던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맑아짐을 느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내 발걸음, 내 심장의 두근거림 

오로지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땀범벅이 된 채 그렇게 혼자 걷던 그 기분이

나는 싫지 않았다.

가끔씩 불어오는 미풍에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 마주친 두 개의 탑.

"아!......"

감은사지 3층 석탑 (*출처 : 네이버)

                                                                                                                                                                                                                                                                              

지금도 생각해봐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3 시절이다.

아버지의 명퇴,

그 이후 개업한 식당에서의 부모님의 고생.

혼자 힘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오르지 않는 성적.


무거운 스트레스의 일상속에서도,

잠깐 한발짝 살던 곳을 벗어나

낯설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내 두 다리로 걸어내고


그 과정에서

주변 풍경을 보고, 느끼고,

또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있는 나를 다시 찾고

현재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탑돌을 쓰다듬어보다가,

또 감포앞바다에서 문무대왕릉을

한참 바라보고 앉았다가...

지나가는 차를 울산까지 얻어타고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나의 즐거운 도보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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