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걸까
초등학생 시절 리모컨을 한참이나 찾았던 기억이 난다. 반쯤 포기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을 때 반찬통 사이 차가워진 리모컨이 덩그러니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어린 나는 그 후로도 자주 잊어버리고 중요한 것을 놓치기 일쑤였다.
또 하나는, 어릴 적 집안 어른이 나에게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비밀스럽게 해 주었던 장면이다. 문제는 어떤 이야기인지조차 기억 자체가 흐릿할뿐더러 이 말이 꿈에서 보았던 건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현실 속 사실인 것인지 이제는작은 확신조차 서지 않는다.
치열한 사랑을 했던 날에 대한 기록으로는 장면을 남긴 사진과 넘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썼던 일기가 있다. 그 마저도 잃어버려 지금의 나로서는 ‘그때는 최선을 다했을 거야’라고 두루뭉술하게 넘겨버리고 만다. 물론 사실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했는지 알 도리가 없어 그저 아름답게 포장된 로맨스처럼 느슨한 각색을 이어갈 뿐이다.
작고 사소한, 가령 고드름의 투명함을 넋 놓고 보았던 일이나 손바닥에 얕은 고랑을 만들어 송사리가 간지럼을 태우던 일도 마찬가지다. 기록하지 않는다면 내 머릿속이나 혹은 몸속 어딘가에서 희미해져 결국 사라지고 말 것들을 잡아두고 싶다. 어쩌면 생은 이런 작은 일들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내뱉어지는 가볍고 쉬운 말이 아닌 느리고 고되지만 시간을 들여 안으로 들이마시는 글로서 기록하는 일을 시작한다. 삶의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기 위해. 적어도 내 이야기는 얼버무리지 않기 위해. 거품이 사라진 삶을 스스로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