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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rekang Aug 02. 2021

임재성 첼로 리사이틀을 보고

임재성 바흐 무반주 전곡 첼로 리사이틀 review

내가 본 음악가 임재성은 반전의 인간이다.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 왔다면서도 아침 9시 리허설을 선호한다. (과연 밤을 새우고 술을 마셨을까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늘 상당히 빡빡한 연주 일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고수한다. (그는 가능한 저녁 8시 이후엔 악기를 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집 거실 한편을 벽돌과 와인병들로 꾸미고 식물을 키운다. 과감한 플레잉을 선보이던 그가 리허설 중간에 진심으로 진지하게 수국에 물을 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를 좋아하지 않기가 좀 어렵다. 


반전의 매력은 물론 삶의 소소한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두 번의 연주를 함께 하면서 알게 된 그는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하고, 느슨한 듯하면서도 매우 정확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돌아보니 나는 전곡 연주를 가본 적이 별로 없었다. ‘전곡 연주를 위한 전곡 연주’가 되면 연주자는 연주자대로 관객은 관객대로 지치고 힘든 상황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바쁜 일상에서 전곡 연주에 시간을 떼는 것은 관객으로서 나름 진지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음악가들이 더욱 전곡 연주회에 가길 싫어하는 것은 안 비밀이다. 


전곡 연주가 진정으로 유의미하려면, 하나의 장르에 대한 그렇게 다채롭고 깊은 면면을 감상하고 싶을 만큼 연주자의 매력과 깊이가 선재해야 한다. 그의 음악을 기꺼이 3시간 앉아서 듣고 싶을 만큼 좋은 음악가. 거기다가 첼로의 구약성서라는 거룩한 바흐의 무반주 조곡 같은 거대한 산을 충분히 자신의 언어로 소화했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는 연주자.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시작부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전곡 연주를 간판으로 내건 연주자들은 그만큼 야심차고, 동시에 아무나 섣부르게 시도할 수 없는 고독하고 긴 여정에 자신을 맡기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30분 앞당겨서 시작된 연주회에 정말 문이 닫히기 30초 전에 간신히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주차장에 파킹 자리를 찾으면서부터 기도가 절로 나왔는데, 다행히 딱 보이는 자리가 있었고 거기서부터는 정신없이 IBK로 뛰어갔다. 시작엔 사람이 적을 수도 있다는 나의 예상을 뒤엎고 사뭇 진지한 관객들이 IBK 1층을 거의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첫 음을 시작하기 전 빈 무대를 채우는 긴장감이 크게 느껴졌다. 관객도 연주자도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자세로.


전반부인 1-3번은 예상대로 매우 안정적이고 조화롭게 진행되었다. 섬세하게 모든 구석구석을 노래하고 이야기했기에 지루함이 낄 틈이 없었다. 모든 연주자는 나름의 매너리즘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의 매너리즘은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듣고 있었지만, 결국 노래하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그에게 넘어가면서 매너리즘이고 나발이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제대로 교육받은 전공자라면 모두 학창 시절에 모음곡이라는 바로크 시대의 장르를 공부하기 때문에 그 구조에 익숙하다. 적어도 알르망드-코랑트-사라방드-지그로 대표되는 모음곡의 순서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자리에 앉아서 한 조성에 20-30분씩 집중하면서, Prelude로 시작하여 Allemande와 Courante를 거쳐 상승하다가, 느리고 애잔한 Sarabande를 전환점으로 삼고, Minuet에서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려 Gigue라는 화려하고 경쾌한 춤곡으로 맺는 모음곡 구조의 감정적 흐름을 따라가는 경험은 전에 느끼지 못한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바흐는 진정 음악적 논리로 청자의 감정을 설계하는 위대한 건축가였다.


15분 쉬고 후반부가 되니 ‘아 이래서 전곡 연주에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연주자와 함께하는 여정 속에 우리의 귀가 IBK홀에 적응하고 그의 악기 소리에 적응하면서 그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더욱 증폭돼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그 많은 프레이즈들을 다 외우는 것을 넘어서서 몸에 체화된 듯 자연스럽게 나오는 노래에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경외와 격려의 박수가 터졌고, 후반으로 치닫을수록 그의 집중력과 체력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마치 올림픽에 나간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듯 연주자 임재성과 한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십자가로 상징되는 다단조의 5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우리 모두의 죄와 고통을 상징하는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런 여정 끝에 다다른 6번은! 임재성이 키워드로 서술했듯이 영광과 기쁨이 가득한 천사의 나팔소리였다. 


1층 맨 뒷 열에서 바라본 관객들의 반응도 압권이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 20-30대로 보이는 젊은 관객들이어서인지 곡과 곡 사이에 기침소리도 거의 없었다. 곡에 너무 집중한 듯 듣다가 뭔가를 떨어뜨리는 관객들이 종종 있었고, 가끔 중간중간 화려한 테크닉을 분출하는 대목에서는 박수를 치고 싶은 듯 움찔움찔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다들 이 성스럽고 고귀한 이벤트에 튀지 않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였다. 


오늘 그의 연주는 코로나 19로 인해 1년 4개월이 지연된 끝에 마침내 이루어진 연주였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 노트에서 지연된 시간만큼 보다 확신에 찬 안정적인 음악을 들려줄 수 있으리란 설렘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이러한 방대한 프로그램을 1년 4개월 더 끌어야 했던 점이 연주자로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인내의 연단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1년 4개월 전에 완성된 프로그램을 그는 끊임없이 꺼내서 갈고닦았던 것 같다. 5월에 함께 연주를 준비할 때, 지나가는 말로 바흐 프로그램을 쭉 해보니 새삼 어렵더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 걸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거진 1년 반 동안 계속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의 프로그램 노트는 진솔하면서도 품위가 있고 꽤 많은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현학적이기를 피하는 좋은 글이었다. 그는 사실 일필휘지 하는 능력자인데, 한번 프로그램 노트를 카톡에다가 단숨에 써 내려가는 걸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그는 연주 이틀 전에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자신이 창단한 첼로 연주단체의 후배들을 돕고자 하는 부탁을 전해왔다. 큰 공연을 앞두고 신경 쓸 일이 많을 텐데 그 와중에도 두루두루 사람을 많이 챙기는구나 생각했는데, 정작 연주에 가서 그를 따르고 좋아하는 20,30대 젊은 관객들의 열광을 보니 공짜는 없구나 싶었다. 그는 연주 후 백스테이지에서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면서 술 약속을 남발했는데, 남발이 아니라 진짜로 모두 지키고 만나고 술을 사줄 태세였다. 내가 속한 에드 무지카 멤버들과도 경리단길 그의 집의 발코니에서 고기 파티가 예정되어 있는데 우리는 한 123번째 정도 순서이지 싶다.


프로그램 노트는 바흐의 J.J. (Jesu Juva, 예수여 도우소서)로 시작하여 S.D.G.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으로 끝맺었다. 별달리 덧붙이는 말 없이 시작하고 맺은 연주에서도 J.J.와 S.D.G.는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다들 숨죽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참았던 열광이 마지막 한 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시끄럽고 욕심 많은 바깥세상을 잠시나마 잊고  ‘작은 시내로 시작해 바다에 이른’ 임재성의 바흐 대장정에 모두가 환호하고 기뻐했다. 값없고 형체 없는, 어찌 보면 연약한 소리의 묶음들이지만, 그 작은 노래 하나하나를 연구하고 묵상하고 연습한 한 명의 위대한 연주자의 빼어난 기량과 성실한 여정에 사람들은 일어나서 환호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7번의 커튼콜에도 앙코르를 하지 않았다. 노 앙코르가 합당한 연주이기는 했다. 그저 우리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한정 없이 박수를 쳤고, 그는 드디어 입을 열어 코로나를 조심하고 그저 감사하다는 간단하지만 마음을 담은 인사를 남겼다. 재성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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