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돌아오면 보고 죽을란다.”
너무 작고 약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한 나는 온 신경을 귀로 모았다. 아버지는 겨우 겨우 입술을 움직여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날의, 전화기 속 아버지 목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차오른다. 쓰러지시기 전, 아무리 몸이 안 좋은 때에도 쩌렁쩌렁 청년 같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아주 힘겹게 내게 전한 아버지의 말. 나는 그 말을 말레이시아 어느 작은 섬에서 들었다. 동생은 괜찮다고 당장 무슨 일 일어나는 거 아니라고 걱정 말라며 나머지 일정을 다 마치고 오라고 했다. 떠나올 때만 해도 걸어서 밭에 기실 수는 있었는데 결국은 이런 순간이 오고 말았다. 몇 년 동안 입맛을 잃고 술에 의지해 온 아버지. 몸무게가 37kg까지 빠진 상태였으니 몸이 버틸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아버지는 입원 내내 아주 긴 잠을 주무셨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그로부터 딱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봄이 왔다. 농사를 지을 정도로 회복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다행히 혼자 거동할 수 있게 되었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신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몸무게도 10킬로그램 늘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드린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계신다. 어느 날에는 빌려온 책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아깝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많은데 시간을 흘려보냈구나” 하셨다.
그렇게 다시 함께 웃는 일들이 생겼지만 농사나 집안일이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 되고 나니 아버지는 조금 우울해하셨다. 일을 멈춘 것뿐인데 마치 쓸모를 다한 물건처럼 느껴지셨나 보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우리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는 힘이 된다는 말로는 아버지의 우울을 다 사라지게 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에서 ‘삶이라는 직업’이라는 글귀를 발견한 날,
“아버지, 거 봐요. 사는 게 직업이라네요.“
“허허, 그럼 나도 직업이 있는 거네.”
아버지는 웃으셨지만 ‘쓸모’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조금은 쓸쓸한 날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봄을 맞았다. 나는 어서 빨리 입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도록 붓글씨 취미를 가졌던 아버지가 입춘 무렵이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께 입춘대길을 문에 붙이고 싶다고, 한 장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아버지는 기운을 내 붓과 화선지를 챙겨 주간보호센터에 가셨다. 그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붓글씨를 쓰셨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가 입춘대길 글씨 쓰는 모습을 본 주간보호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시는 어른들이 너도나도 써달라고 한 모양이다. 집에 돌아오셔서는 그렇게나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딸을 위해 뭔가를 해준다는 작은 기쁨을 드리려 했을 뿐인데 횡재를 했다. 잘 쓴다는 칭찬에다가 서로 써달라는 말까지 들은 아버지는 신이 나셨다. 나는 뿌듯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 종이를 현관문 앞에 붙였다. 햇빛 따뜻한 날씨를 맞이해 경사가 많기를 기원한다는 그 말이 정말 효험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우리 집에 이런 경사가 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입춘이 일 년에 하루뿐이란 거다. 며칠에 한 번씩 입춘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절기마다 써 붙여야 할 문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춘대길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효를 다하고 말았다.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그렇게 봄이 가고 날씨가 더워질 무렵 또 다른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당장 그림도 글도 적히지 않은 종이부채를 여러 개 샀다. 그리고는 아버지께 주위 사람들에게 여름 맞이 선물을 하고 싶으니 부채에 좋은 글귀를 좀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내 ‘계획’을 눈치채신 건지 이번에는 반응이 별로 없었다. 할 수 없네, 하고 있는데 며칠 후 아버지가 신문 귀퉁이를 찢어 쓴 메모를 내미셨다. 글귀를 골라보라고 말이다. 나 모르게 벌써 부채에 쓸 문장들을 고르고 계셨던 것이다. 당신이 책에서 본 글귀도 있었고 스스로 지은 문장도 있었다. 남에게 줄 글귀를 생각하니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더라고, 좋은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 하셨다. 잠을 자다가도 문장이 생각나더라고, 생각할수록 더 멋진 문장으로 되니 놀랍고 신기했다고. 다음날에는 노트를 보여주셨다. 빼곡하게 쓴 문장들이 몇 장이나 되었다. 욕심 없는 삶을 긍정하는 편안한 구절들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이미 점찍은 어떤 구절 앞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그 동그라미가 사랑스러워 나는 한참 페이지를 넘기며 구경했다.
며칠 후 아버지가 드디어 부채에 글씨를 써왔다. 부채를 펼치니 ‘이만하면 됐다!’라는 말이 촤라락 펼쳐졌다. 아빠의 글씨로 꽉 찬 부채는 어떤 공작새의 깃털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엄마께 보여드리니 나의 ‘부채 프로젝트’를 못 미덥게 보던 엄마도 웬일인지 갖고 싶다고, 말이 너무 멋있고 마음에 든다고 하신다. 들뜬 모습으로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아버지. ‘이만하면 됐다!’라는 구절을 되풀이해서 읽는 엄마. 이 말에 모든 게 들어있다는 엄마의 진심 어린 칭찬에 아버지가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아버지는 원래 호탕하고 밝은 분이다. 말도 재밌게 잘 만들어 내셨다. 언젠가 병원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께 “의사가 뭐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의사가 죽는 데 지장 없대.”
얼핏 들으면 그렇구나, 다행이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이 요상한 말. 이 말을 만들고 얼마나 즐거워하셨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다 속는다고 말이다. '사는 데' 지장 없다가 아닌 죽는 데 지장 없다는 아버지식 ‘블랙 유머’. 그런 아버지의 유머와 센스가 다시 살아났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나를 긍정하는 ‘이만하면 됐다’는 올여름 우리 집에서 가장 ‘히트 친’ 아버지의 말이 되었다.
그나저나 여름이 가면 또 어쩌나. 부채의 인기도 곧 시들해질 텐데.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더위가 물러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계절은 흘러간다. 아버지와 나의 시간,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그 시간도 흘러간다. 내년에도 다시 한 번 봄여름의 붓글씨 행사를 ‘진행’하고 싶지만 이번엔 아버지의 시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이만큼의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 ‘만족을 알면 행복하다’. 아버지가 내게 써주신 글귀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시원하게 부채를 펼친다. 그래, 나에게는 무적의 부채가 있다. 이 멋진 부채가 있어 길고 뜨겁고 지루한 여름도 견딜만했다. 덥고 짜증 나고 일은 마음대로 안 될 때마다 부채로 바람을 일으킨다. 아버지가 써 준 그 말이 바람을 타고 내 안에 스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러네. 그러네. 아버지의 말이 맞네’ 맞장구를 쳐본다. 이제 가을을 위한 아이디어나 슬슬 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