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명절엔 엄마와 빨간 물김치를 담가요.

by Jean


곧 설날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귀성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이들로 북적이는 공항 풍경을 연신 보여준다. 한복을 입고 나온 출연자들이 다복함을 자랑하는 설특집 프로그램들에서는 시끌시끌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다 남의 집 얘기다.


이제 차례도 제사도 다 없어진 집. 친척들의 방문도 뜸해진 집. 하나 있는 조카가 군대에 가고 나니 명절은 더 단촐하고 조용해졌다. 할머니가 된 엄마는 비로소 명절 음식 준비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졌지만 그 홀가분함이 좋으면서도 못내 서운하다. 명절인데 기름 냄새를 풍겨야 하는데 하시지만 음식을 해놔도 식구들이 튀김이나 부침개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먹는 데 영 소질들이 없다.


"누가 먹는다고... 하지 마. 하지 마."

"엄마 힘들어. 하지 마. 하지 마."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오니 엄마도 뭔가를 만들 흥을 잃으셨다. 설이면 며칠 전부터 김치만두 속을 준비해 하루 종일 몇 백개를 빚어 냉동실을 채웠던 일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그렇게 하기 싫더니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시끌벅적한 명절의 시절은 그렇게 다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엄마가 포기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명절인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서운한 엄마는 물김치를 담근다. 지난 추석에도 그리고 이번 설에도. 그나마 그걸로 명절 기분을 내시는 엄마를 도와 아마 절반도 다 못 먹을 양의 물김치를 담근다. 오늘은 알배추 다섯 통에 커다란 무를 두 개나 샀다.


"다 못 먹을 걸 뭐 하러 이렇게 많이 해."


지난해까지는 양이라도 줄이자고 말렸지만 올해는 그 말도 삼켜버렸다. 해가 갈수록 엄마가 더 쓸쓸해하시니 아무 말 없이 거든다. 김장 때나 쓰는 큰 '다라이'가 나올 일인가 싶지만 입은 꾹 다무는 게 상책이다. 엄마와 나는 씻고 썰고 절이고 빨간 물을 내고 반나절을 걸려 물김치를 만들었다.



아픈 무릎을 절뚝이면서도 엄마 얼굴에 뿌듯함의 미소가 번진다. 큰 김장김치통에 가득 담고 옆집에 준다고 또 한 통을 신나게 담으신다.


저녁, 간이 잘 베어든 빨간 물김치를 한 그릇 퍼 엄마와 맛본다.


“아, 칼칼하다!”


느끼한 것들 싹 씻어줄 맛이다. 혹여 명절 단골 질문들 때문에 속이 꽉 얹힐 것 같을 때에도 묵은 체증마저도 쑥 내려줄 맛! 이 시원한 물김치가 있으니 올 설도 무사히 지나가겠다.


아, 쓸쓸함?

너도 썩 물렀거라!



<엄마표 물김치 레시피>(재료 양은 우리 집 기준)


준비물 :


알배추 5통, 무 큰 거 2개, 쪽파 한 단

양념 : 생강, 마늘, 건고추, 싱싱한 홍고추, 양파, 고춧가루, 소금, 설탕이나 뉴슈가(기호에 따라 사용)


1. 무와 배추는 씻어서 비슷한 크기로 썰고 소금에 절여둔다.

2. 말린 홍고추는 대강 잘라서 물에 불려둔다.

3. 생강, 마늘, 건고추, 싱싱한 홍고추, 양파, 고춧가루를 믹서기에 모두 넣고 곱게 간다.

4. 곱게 간 재료들을 베주머니에 넣고 묶는다. 양념이 든 배주머니에 불을 부어가며 빨간 물이 배어 나오게 한다. 여러 번 되풀이해 절인 무, 배추에 부어준다.

5. 물을 더 부어 원하는 양으로 맞추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6. 쪽파를 넣고 한 번 더 섞어준다.

6. 단맛을 좋아하면 설탕을 조금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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