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 할아버지도 호텔도 잘 지키고 있지?

태국 뜨랑 74년 된 호텔에서의 며칠

by Jean

‘모모가 잘 있을까?

할아버지는 건강하시려나?'


이른 아침, 섬(꼬묵 Koh Mook)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뜨랑(Trang)으로 나가는 배에 오르고 나니 불현듯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할아버지가 안 계시거나 모모가 없으면 어쩌나, 문을 닫아버렸으면 어쩌나 싶었다.


뜨랑에는 세 번째 가는 길이다. 두 번 모두 뜨랑 기차역 앞에 있는 아주 오래된 호텔에 묵었는데 이번에도 그곳으로 가려한다. 섬 여행을 마친 여행자들은 보통 뜨랑에서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거나 하루 정도 머문다. 특별할 게 없어 여행자들에게는 스쳐가는 도시, 우리는 그런 뜨랑도 좋아해 며칠 묵기로 했다. 숙소는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 뜨랑의 숙소는 당연히 거기여야 하고, 그 숙소는 늘 한산해 예약이 필요 없다.


배에서 내리니 미니밴이 뜨랑 기차역까지 데려다준다. 기차역에서 숙소까지는 2분. 짐을 끌고 걸어가는 동안 가슴이 쿵쾅거린다. 혹시나 혹시나... 아, 다행히 문이 열려 있다. 할아버지는 3년 전보다 살이 조금 빠지셨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힘차다. 이제 모모만 만나면 되는데 어디 갔지? 로비를 둘러보는데 로비 저 안쪽에서 까맣고 통통한 모모가 누가 왔슈? 하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컹, 컹. 딱 두 번 크게 짖고는 이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모모. 다행이다. 모두 무사해 우리는 다시 이렇게 만났다.


1952년 문을 열었다고 하니 올해로 74살이 된 스리뜨랑(Sritrang) 호텔. 호텔이라는 표시는 딱 한 곳에 있다. 출입문 위쪽 창 위에 작게 쓰여있는데 그마저도 먼지가 뽀얗게 앉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못 찾는다. 시설이 많이 낡아서 그런지 우리가 머문 나흘 내내 다른 손님은 없었다. 연말이라 근처 섬들 숙소는 꽉 차고 가격도 비쌌는데 이곳에 오니 다른 세상 얘기다.


주인 할아버지는 아무 방이나 고르라며 열쇠를 담아둔 나무 상자를 우리 앞에 내민다. 호리병처럼 깎은 나무 열쇠고리들이 들어있다. 예전에는 3층도 객실이었는데 이제 2층만 객실로 사용해 열쇠 수가 줄었다. 우리는 베란다가 있는 2층 코너 방을 선택했다. 창문을 다 열어두면 오렌지빛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아오고 저녁이면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돛처럼 멋지게 휘날리는 방. 화장실 창문으로 뜨랑역이 훤히 내려다 보여 손을 씻거나 샤워를 할 때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 위해 기차표를 사둔 사람 같은 마음이 되었다. 기차로 몇 날 며칠을 달려가야 해 기차에 타기 전 정성스레 마지막 샤워를 하려는 뭔가 고독한 여행자의 마음이.


스리뜨랑 호텔의 가장 좋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뜨랑역과 가깝다는 것. 하루에 기차가 두 번쯤 지나가고 나면 일찍 문을 닫는 작은 역이 코앞에 있다. 기차가 곧 들어온다는 방송을 듣고 나가도 늦지 않는다. 게다가 역이 서쪽 방향에 있어 역사 뒤로 펼쳐지는 노을을 매일 볼 수 있다. 방에서 베란다에서 화장실에서 노을과 함께 뜨랑의 아름다운 저녁을 맞이한다. 시설이 낡아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 멋진 노을 때문에 다 용서가 된다.


2층 코너방 베란다에서 보는 노을 풍경
뜨랑 역 뒤로 해가 넘어간다.


밤의 호텔은 적막하다. 저녁을 먹고 들어올 때쯤이면 할아버지도 모도도 자러 들어가고 로비에는 아무도 없다. 귀가가 좀 늦을 거라고 얘기하면 주인 할아버지가 아예 대문 키를 주는데 문을 '따고' 들어갈 때면 학창 시절 늦은 밤 부모님께 혼날까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갔던 일이 생각났다. 지난번 왔을 때는 월드컵 시즌이었는데 티브이가 제대로 안 나왔다. 조금 나오다가 자꾸 멈춰 아무도 없는 로비로 내려갔다. 티브이를 켜고 낡고 오래된 소파에 앉아 월드컵을 보던 밤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스리뜨랑 호텔은 그런 곳이다. 호텔이라기보다는 집. 그러고 보니 나는 뜨랑에 집을 가진 사람이다.


모모는 입구에 누워 자고 주인 할아버지는 언제나 저 자리에서 티브이를 본다.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흘러간다.


뜨랑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짐을 들고 로비로 내려갔다. 언제나처럼 모모는 호텔 입구에 누워 자고 주인 할아버지는 늘 앉는 자리에서 티브이를 본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 참 좋아 계단에서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느리게, 가고 있는지도 잘 못 느낄 만큼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 거기에 있었다. 호텔도 주인 할아버지도 모모도 그리고 손님인 나도 아주 천천히 늙어가는 시간. 그 근사한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호텔을 나섰다. 할아버지와 모모의 배웅을 받으며.


입구를 턱허니 차지하고 오수를 즐기는 모모.


자는 시간이 하루의 2/3쯤 되는 모모.

호텔 입구를 턱 하니 막고

세상 편안하게 오수를 즐기는 모모.

모모, 모모, 하고 부르면

작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넉살 좋은 녀석이 보고 싶다.


모모야, 잘 있니?

잠만 자지 말고 호텔도, 할아버지도 잘 지키고 있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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