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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May 24. 2023

긴 하루

북새통, 북새통, 제주에서

전쟁터가 따로 없다. 요 몇 년 동안 제주공항이 이렇게 붐비는 것은 처음 본다. 북새통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휠체어 타고 자식들 손에 이끌려 나들이 오신 어르신부터 수학여행 인 듯한 청소년들까지. 골프채 짐으로 보내는 사람. 공항 벽에 있는 전기 코드를 이용하여 충전하는 사람. 관광기념품 가게에서 제주 특산품 구입하는 사람. 제주 면세 코너에서 쇼핑하는 사람. 저녁 먹거리 해결을 위하여 식당 앞에 줄 서 있는 사람. 기기 앞에서 체크인하는 사람. 그야말로 10인 10색의 형태로 사람들은 서성거리고. 기웃거린다.


화장실도 붐비고. 심지어 공항 바닥도 붐빈다.


예약한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다. 항공사 사정으로 지연된다고. 그게 청주행 막비행기이다. 더구나 그것을 놓치면 공항에서 집 가는 것도 신경 쓰인다. 누군가 나오거나 택시를 타거나. 번거롭기 그지없다. 그 예약권은 일단 날린다 생각하고 바로 다른 비행기가 있는지 빛의 속도로 검색했다. 딱 1장 남았다고 뜬다. 내가 예약한 것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막비행기가 지연되어 가는 것이라면 비용의 메리트는 없다.


예약한 항공권을 앱에서 취소하려다 말았다. 지연 안내 문자가 많이 이른 시각에 온 것이라 공항 가서 물어보면 취소 수수료 없이 일이 해결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온라인으로 발권을 미리 한 상태였다. 창구에 갔다. 이게 지연 문자가 왔는데 취소 수수료를 온전히 우리가 다 부담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할 수 없지. 물어야지. 앱에서 취소를 눌렀다. 바람처럼 뭔가 휙 지나간다. 100% 환불된다는 안내 문장이다. 아, 전액 환불되는구나 싶어서 앱을 눌렀는데 나는 이미 온라인 발권을 해서인지 실행 화면이 안 생긴다.


다시 창구에 갔다. 희한하게 그 항공사 수속 줄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아마도 지연되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 항공사에서 딱히 할 일이 없나 보다.


“안녕하세요. 청주 가는 00시 비행기 지연 안내가 문자가 왔어요. 그래서 취소하려고 들어가 보니 전액 환불 된다고 안내되었는데 실행이 안 됩니다.”


“아, 그래요. 어, 이거 안 되는데요.”


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전액 환불이 된다는 안내창이 떴는데 온라인으로 체크인 먼저 했다고 전액 환불이 안 되면 불합리하지 않을까요?”


“잠시만요. 확인 좀 해 볼게요”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수화기에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현장에서도 환불 조치가 된다는 거죠? “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서,


”말씀처럼 전액 환불이 된다고 합니다. 인적사항 확인하고 카드 취소 해 드릴게요 “라고 했다.


나는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물어봐 주고 확인해 주셔서 감사해요 “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다시 전화를 한다.


“현장에서 전액 환불하는 창이 저한테 제대로 안 뜨는데 왜 그런가요?”


“네, 네”


하더니, 나에게 잠시 이동 좀 부탁드릴게요. 하더니 세 칸 정도 지나서 다시 창구에 섰다.


“제 코드로는 전액 환불 창이 안 떠서 여기에서 처리해 드릴게요 “ 한다. 아마도 신입사원인 모양이다. 그러고는 그 일처리 하는 선배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제가 한 번도 안 본 창이니 옆에서 좀 볼게요. 선배님” 이런다. 세상에.


이렇게 막비행기 취소는 전액 환불을 했다. 그리고 이제 갈 비행기 수속을 하는데 기기 발권도 안 되고 온라인 체크인 문자도 안 왔다. 온라인 체크인 되는 항공사이다.



기기 발권이 안 되어서 다른 항공사 창구에 또 섰다. 비상구 자리라 기기나 온라인 발권이 안 된단다. 종이 티켓을 받아서 보안대를 거쳐서 출발선 주변에서 나도 바닥에 앉아서 핸드폰 충전한다. 그러면서 바닥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이제 마무리해야지 하는 순간 톡이 또 왔다. 1시간 지연. 아이고 세상에. 그럴 것 같으면 짐을 안 부쳤다. 화물 늦게 나오면 청주공항 막 기차를 놓친다. 그러나 청주공항 도착이 좀 넉넉하다 싶어서 마음 놓고 짐을 부쳤는데 또 지연이 떴다.


공항에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공항은 몸살을 한다. 이제 막 탑승 시작하나 싶었는데 또 한 시간 더 기다려야 하고. 청주 공항에서 집 가는 것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타거나 못 타거나 이다. 그동안의 내 승차권 복을 믿어보기로 했다. 짐은 귀신처럼 일찍 나올 것이고. 나는 10분의 여유를 두고 기차를 탄다!!!! 제주 공항 바닥에 앉아서 나는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로 했다.


하루가 너무 길다.

#제주공항바닥에 앉아서

#벽의 전기코드 쪽도 만원이다


앞으로 두 번 더 와야 하는데 와… 벌써 지치네

제주 공항 바닥에서 이 긴 글을 다 썼다.


이 전기 쓸 수 있는 코드벽도 경쟁이 치열하다.
바닥에 앉았다.

항공사 신입사원 칭찬하려고 핸드폰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내가 탈 비행기가 또 지연이라는 안내 문자를 받고 나니 칭찬 글 쓸 여유가 없어졌다. 야박하다. 그냥 사실만 나열한다.


아직도 제주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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