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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Oct 20. 2023

청년들에게 미안하다

지금도 진행형

<청년,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미안해야 하나?>


소위 스카이 나와서, 3년 동안 대기업 중에서도 한 군데에 올인하여 오매불랑 거기에만 원서를 냈다. 그런데 매번 떨어졌다 칩시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 상황을 보는 부모는 가슴이 아프다 합니다. 그럼에도 합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합니다, 결국 내 아이가 노력을 덜 했나, 아니면 부모가 덜 밀어줬나 하는 자책을 하기도 합디다.


팡팡한 스펙에, 팡팡한 외국어에, 팡팡한 인성에, 거기에 외국물까지, 과연 무엇이 부족하여, 대기업에서는 번번이 그 취준생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엔 그런 친구들이 넘치고, 넘칩니다. 더불어 기업에서 그렇게 대량의 인원을 뽑지를 않지요. 온 동네가 일자리인 그 옛날, 산업화 시대에는 토목부터 시작하여 전자까지 심지어는 밥집까지 움직이면 일자리였지요.


하나, 지금은 그런 것은 먼 나라이웃나라입니다. 소위 기계나 로봇이 할 수 없는 직군에서만 사람을 뽑습니다. 그 현상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청년 진로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또 했고, 그럼에도 우리 기성세대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참 아득했습니다.


제발 청년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말이나 하지 말았으면...


속된 표현으로 지금의 청년만큼 대학 때 공부한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싶고, 법대나 의대 등 특정학과를 제외하고 학부에서 지금의 청년들만큼 공부를 빡시게 했을까 싶고, 지금의 청년들만큼 영어를 잘했냐 물어보면, 다 거기에서 거기일 수 있다는 상상도 있지요.


나 국비로 유학 갔어, 나 노력했어. 그 말도 참 아득합니다. 그런 제도도 결국은 사람들이 다 유학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기에 덜 치열했고, 그 역시 교육복지의 한 형태였지요. 결국은 국가가 뭐든 도와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현상은 어떤가요? 국가가 그 청년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저는 여전히 취업을 못 했고, 여전히 비정규직이고, 여전히 인턴이다는 청년들을 보면, 미안함이 목구멍까지 옵니다. 우리 세대가 청년들에게 이런 것을 물려주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고생했나, 하는 아득함이 옵니다. 미래에 대한 담보의 불분명은 분명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다는 생각을 또 하고, 또 했습니다.


뭐든 함께 할 수 있는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 우리들 어른의 몫이다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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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페이스북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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