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이름 없는 그대들
밤이 깊었다. 하늘에는 별이 수놓아지고, 땅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름 없는 자들. 농부이던 이도, 나무꾼이던 이도, 장사치이던 이도, 서생이던 이도. 신분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랐지만, 그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조국.
“우리가 누구인가?”
낡은 저고리를 걸친 한 사내가 낮게 물었다. 그 앞에 모인 이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러나 이내 모두 같은 말로 화답했다.
“의병이다.”
그 말은 바람처럼, 강물처럼, 산을 타고 울려 퍼졌다.
“너는 농부였느냐?”
“예.”
“하지만 이제, 네 손에 든 건 낫이 아니다.”
“칼입니다.”
“너는 상인이었느냐?”
“예.”
“그러나 이제, 네 손에 든 건 저울이 아니다.”
“화승총입니다.”
“너는 나무를 베던 자였느냐?”
“예.”
“그러나 이제, 네가 벨 것은 나무가 아니다.”
“일본군입니다.”
그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들이 언제부터 이 자리에 모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다, 운명처럼 이곳에 모였다. 그리고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다.
의병.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헤아릴 수 없는 자들의 수. 어제는 농사를 짓던 자들이고, 오늘은 일본군과 싸우는 전사가 되는 자들. 오얏꽃처럼 피고, 지고, 다시금 살아나는 존재들.
“의병은 어디에나 있다.”
누군가 말했다.
“길가에 핀 풀처럼, 나무에 깃든 바람처럼, 산속에서 흐르는 물처럼.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있는 한, 조국은 지지 않는다.”
달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춘다. 이들은 서로를 믿는다. 서로가 서로를 의병이라 부르며.
칼을 든 농부도, 총을 든 장사꾼도, 붓을 든 서생도, 도끼를 든 나무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밤.
“우리는 하나다.”
그들이 속삭인다.
그렇게, 이름 없는 의병들의 밤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