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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어른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영국에서, 그리고 로제타 스톤 앞에서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보통 내가 영국에 갈 때면 ‘얼스코트(Earl’s Court)’라는 지역에서 지내곤 한다.

사실, 이곳을 특별히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교통의 편리함과 그 동네가 주는 안정감 때문이었다.

얼스코트는 런던의 중심과 적당히 가깝고, 지하철노선도 여러 개 있어 어디든 이동하기가 수월하다.

게다가 이곳은 런던의 번잡함에서 살짝 비껴간 느낌이라, 시끌벅적한 중심가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숙소 주변을 걷다 보면 작은 카페와 슈퍼마켓, 그리고 한적한 거리들이 이어진다.

바쁜 런던 속에서도 이곳만큼은 약간의 여유를 품고 있는 동네 같았다.

그리고, 늘 내가 가는 곳이 있다.

대영박물관 로제타스톤

로제타 스톤 앞에서, 시간을 잊고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가면 나는 항상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대영박물관에는 수많은 유물이 있지만, 나에게는 이 돌 하나가 박물관 전체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처음 로제타 스톤을 마주했을 때, 나는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전 인류의 역사를 해독하는 열쇠를 본 것 같았다. 이 작은 돌멩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집트 문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다

로제타 스톤은 1799년,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검은 현무암에 새겨진 글자들은 당시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돌에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Hieroglyphs), 민중문자(Demotic), 그리고 그리스어(Greek)라는 세 개의 언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고대 이집트 문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리스어를 해석할 수 있었기에 이 돌을 통해 결국 사라진 언어를 되찾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은 오랜 연구 끝에 로제타 스톤을 해독했고, 덕분에 우리는 이집트 문명의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다.

그야말로 역사의 암호를 푸는 열쇠였던 것이다.


왜 나는 이 앞을 떠나지 못할까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고, 사라진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이.

이집트의 신전과 벽화 속 문양들이 이 돌 하나 덕분에 다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

그래서 나는 박물관을 찾을 때마다 로제타 스톤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기념사진을 찍고 떠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돌에 새겨진 문자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앞에 서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납작 복숭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에서는 납작 복숭아가 제일 맛있다!

고풍스러운 도시를 거닐며 한입 베어 물 때의 그 기분.

로제타 스톤 앞에서 역사의 깊이를 느껴도, 결국 입안 가득 퍼지는 달달한 맛은 납작 복숭아가 최고다.

대영박물관도 좋고, 역사도 멋지지만,

런던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맛은 언제나 납작 복숭아다.


내셔널박물관 매머드

내셔널 박물관에서,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어른

영국 '내셔널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을 거닐다가 한 장면을 마주했다.

거대한 매머드 화석 앞에서,
낡은 '바버 재킷(Barbour Jacket)'을 걸친 한 노신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의 말에 집중했고,
그의 손짓 하나에도 눈을 반짝이며 반응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그 노신사는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박물관의 조용한 공기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마치 먼 과거에서 이야기를 끌어와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아이들은 그 거대한 화석보다
그 노신사의 말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

세월이 흘러도, 아이들은 아마 그 매머드 화석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날 들었던 이야기와
눈앞에서 펼쳐졌던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오래된 유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유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른으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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