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어제는 퇴근 후 대전의 한 공연장에서 클래식 공연을 감상했다. 언제 공연을 봤는지가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차를 하고 공연장 로비에 들어가려는데 야외에 세워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켜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니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티켓을 받아 들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울의 공연장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일 년에 70~80편의 공연을 감상하던 그때가 생각나자 그리움과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는 슬픈 생각을 안고 객석에 앉았다. 그렇게 공연은 시작됐다.
공연은 지루하고 난해했다.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들로 이루어진 레퍼토리는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다는 설렘을 실망으로 바꾸어 놓았다. 피아노 3대가 현악기와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루었으나 기분 좋은 느낌을 깨우진 못했다. 곡들이 어려운 탓이었다. 몇 곡은 현악기의 선율이 감미로워 듣기 좋았으나 대부분의 곡들은 피로감을 불러왔다. 그나마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캐럴이 흥겨워 약간의 좋은 기분을 느끼며 공연장을 나올 수 있었다. 마음을 울리지 못하고, 기분을 좋게 하지 못하는 음악은 고통 그 자체다.
공연장을 나와 집으로 가면서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기분 좋은 감정으로 객석에 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앞서 반드시 하는 행동이 있다. 일이 시작되기 전에 상황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집이나 회사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접어들면 이것을 꼭 실천한다. 10초라도 눈을 감고 원하는 상황을 상상하거나 명상 문을 암송하면서 좋은 기분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기분 나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설령 생긴다 해도 상황에 휩쓸려 몸과 마음이 상처를 입지 않는다. 양자역학에서도 밝혀지고 있는 감정의 비밀이다.
오늘 오후에는 문화정책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전에 몸담았던 직장에서 열리는 세미나였고, 유튜브로 생중계가 되는 행사라 부담스러웠다.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하면서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세미나가 계획대로 끝나 박수를 받는 모습을 그렸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좋은 기분을 느끼며 토론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세미나는 큰 탈 없이 진행됐다. 약간 떨긴 했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참석했던 분들과도 기분 좋게 헤어졌다.
우리는 기분을 통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사회적 거두리기가 다시 강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요즘, 기분을 통해 이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기분이라는 광대한 에너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