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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Mar 19. 2016

3월 4일.

3월을 보내며.

1. 눈이 왔다. 눈이 올 수 없을 하늘에 눈이 나린 다는 뜻은 지극히 예외적인 상태라는 뜻일 테다. 그렇게 지나갔다, 3월 4일이. 미역국 대신 술을 마시게 되었던 첫 해였다. 정신이 없이 지나가는 아찔한 시간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눈빛을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 휑하게 비어있는 도로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삼일도 되지 않은 시작의 초입에서 낯선 대학 선배와 동기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젊음은 사람 간의 경계를 쉬이 허물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얼굴을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된 관계이지만, 우리는 저마다 몇 년째 보는 사람들처럼 즐거웠다. 눈은 나렸고, 나는 술을 마셨다. 아직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마셨다.



2. '옳고 그름'을 배울 때였다. 옳지 않음은 청춘의 적이라 생각했던 때라 그럴까, 옳지 않음을 방관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제법 컸다. 시간이 한 참 지난 후에 생각을 해 보니, 어떠한 '이념'에 '경도(傾倒)된다'는 것이 이런 것과 비슷할까 싶기도 했다. 나는 사상가도 혁명가도 쥐뿔도 아니었음에도 어떠한 것에 대한 '믿음'이 가져오는 무서움, 혹은 맹목을 경험하고 있었던 때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든 젊음은 그럴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 많지 않기에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실천, 그것으로써 저질러지는 실수와 문제, 또한 다시 바로잡으려는 패기, 이 모든 것을 반복함으로써 얻어지는 경험과 지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던 A가 있었다. '옳고 그름'을 함께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길을 걷겠다며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길을 잡았던 A였다. 우리는 친했으나, 생각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위로 나는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 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합리화하며. 그때도 3월 4일. 끝이 난 관계라 생각했는데, A가 찾아왔다. 모두가 흥겨워하고 있던 그 술자리에서 이미 내 눈동자의 절반은 술로 채워져 있었고,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시답잖은 선물을 사들고 찾아와 준 A를 나는 와락 껴안았던 기억이 있다.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믿었던 오만이 부끄러움으로 일깨워졌던 순간이었다.



3. 언젠가 B는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며 영화와 드라마들을 무색무취의 건조한 동영상 파일의 형태로 내게 준 적이 있었다. 예술이 작품이 되지 못하고 파일이 되는 시대에 살게 되면서 나는 수많은 예술과 영상과 음악들을 '저장'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왔다. 심지어 돈을 주고 구입한 것도 방치되었다. 방치되어 뽀얗게 먼지가 쌓이고, 존재 조차 잊어갈 때(그러니까 한 3년이 지나서), B의 존재도 희미해질 때 즈음 나는 어떤 영화를 우연히 꺼내보게 되었다. 그때일 것이다, 그 파일이 내게 영화로 살아난 것은.

그 영화를 보며 나는 제법 오래 울었다. 그때 날짜, 3월 4일.  흩어지는 벚꽃의 색채감, 누군가를 기다리며 졸이게 되는 마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감상, 그 모든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그리움, 대상도 알 수 없는 그리움.

꽃샘추위 때문에 오들오들 떨고 있던 마음에 풋내 나는 생각들이 섞이지 못한 채 공허함만 채우고 있던 그 시간이 그 해의 3월 4일이었다. 이제는 술도 없던 3월 4일이었다. 술도 의미 없던 시간, 이제는 미역국을 능숙하게(그러나 맛은 보장되지 않는) 끓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4.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 이어졌다. 업무를 인수인계받고 파악하는 것도 급하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을 파악하는 것도 제법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다. 순리대로 생각해도 당장 급한 일은 아이들을 파악하고 그들과 눈빛을 맞추는 일이 먼저다. 이름을 외우는 일은 잘 하지 못하지만, 관심을 갖는 일은 자신 있다. 온 세상이 호기심이던 때가 있었다. 스무 살 남짓의 나는 그랬고, 호기심 때문에 나는 여기까지 온지도 모른다. 사소한 감정, 사소한 사물들까지 모두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그 시절이 여전히 나는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호기심 가득한 녀석들의 눈을 보면 사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가르치는 일은 아니다, 다만 역시나 나는 호기심으로 이 일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을 뿐. 개학일이 3월 4일이었다. 정신없는 그 하루의 시작에 나는 제법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그때의 나는 이 아이들이 선물같이 느껴졌다. 선물 같은 정신없는 나날들이 한 달 여가 지나고 숨을 돌렸을 때에 나는 B에게서 받았던 그 영화가 다시 생각났다.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센티미터> 중에서.


3월은 봄일까, 겨울일까.


나의 3월 4일은 언제나 모호함 속에 시작되어 풋내 나는 시간들을 거쳐가는 어수선한 날이다. 겨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산만하고, 터지기 직전인 목련은 순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터지고 나면 그리도 허무하다. 그럼에도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센티미터>가 잘 어울리는 이 계절을 사랑하기로 했다. 첫 장면이 봄이었고, 그 봄을 지나 폭설이 쏟아지는 그 겨울을 뚫고 그녀를 만나러 가게 되었던 시간적 순서, 그리고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그녀와 또 다른 만남이 있었던 여름.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봄-겨울-여름의 순서로 보여주는 두서없는 계절의 진행 속에는 시간보다 중요한 감정의 질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그러나 끝내 마주할 수 없었던 그 아픔을 우리는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서서히 어떤 것들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특별한 날이기보다 무언가 스쳐가기에 적절한 날짜이길 바라게 되었다. 봄도 겨울도 아닌 날씨 속에서 경계를 늦추었던 많은 사람들은 감기를 앓기도 한다. 앓았던 것들을 떨구고나면 3월은 지나간다. 하나씩 배우고 하나씩 선물 받으며, 하나의 서정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의 3월은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이겠다. 만족스러운 서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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