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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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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Jan 09. 2017

꾸준함에 대하여.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아니 대학까지 포함해도 되겠다.) 한 번도 지각, 조퇴, 결석을 한 적이 없었다. 이 근면 성실한 12년의 개근상에 대해 예전에는 별 것 아니라 생각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그 12년간 한 번도 변함없이 아침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고 아파서 징징대거나 일어나기 싫어 게으름을 피우는 나를 채찍질하거나 달래 가며 학교를 보낸 엄마의 위대함이라 생각하고 있다. 요즘 엄마의 입김이 사라진 나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더구나 이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엄마의 능력이었음을 알고도 남는다. 결혼을 할 때에도 나의 배우자에 대해 가족에게 소개했을 때, 어머니는 사위가 될 사람에 대해 그 부분을 아주 큰 장점으로 꼽으셨다. 10년 가까이 한 번의 이직이 없이 그 자리를 오롯이 지키는 일, 그 사이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어떤 식으로든 간에 극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요즘은 적절한 시기에 이직하지 못하고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따금 걱정하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부분은 다른 범주에 초점이 있다. 직장을 옮기지 않았다는 점보다 어떤 '분야'에 대해 일을 10년씩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 분야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받고 입증해 낸다는 점, 그 정도의 인고의 시간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는 점, 그런 것들에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이 어른들의 눈에서는 한 가정을 일구게 될 한 사람의 남자로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장점으로 보였을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의 현재는 그 과거의 총체적 결과물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 나간다는 점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되든 쉽지 않은 것은 맞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꾸준히 일구어 놓은 어떤 이의 결과에 대해 찬사와 부러움을 보낸다. "무엇이 더 좋고 쉬운 일인지, 무엇이 더 고급스러운 일인지를 찾고 알아봤는데 결국은 소위 다 '막노동'이더라."라고 동생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돈을 조금 더 많이 벌고 소위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전문적 지식을 쌓아도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몸과 머리를 아주 세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일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르와 분야를 불문하고 모든 일에는 어떤 결과물을 내거나 어떤 일을 '했다'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려면 진득함과 집중력, 그리고 참을성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지만, 현 상황에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고 싶다면(그것이 변화라고 한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이때 해야 하는 그 무엇은 결국 모두 '막노동'이고, 노골적이고 구체적이며 그야말로 리얼한 가장 밑바닥의 기본적 일상이다. 그 기본적 일상과 리얼한 밑바닥을 경험하여 오랜 기간 무언가를 해 나간 사람들의 어깨는 그리하여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아주 쉽게 웃어 보이는 매너와 여유를 가지지만, 무언가를 쉽게 결정하지 않으며 무언가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깊이가 생긴다는 뜻이겠다.

일본 교토의 중심가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식당. 메이지 11년부터 문을 연 집이라 써있다. 19세기 후반부터 문을 열었다는 말에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한때 즐겨본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낀 것은 어떤 생동하는 긍정의 에너지였다. 세간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든 관계없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어도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 얼굴은 아무리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이어도 편안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얼굴이 편안하다는 말은, 손과 발에 물과 흙을 묻히지 않고 무노동으로 살았다는 말이 아니다. 편안하다는 말은 마음과 관계된 말이다. 몸의 형태는 마음의 형태를 보여주는 매개이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늘 어떤 힘을 얻곤 했다.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든 그들은 소박하고 단정하며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행복에 대한 정의도 모두가 거짓말처럼 똑같았다. 그리고 다른 꼼수 없이 자신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고됨과 힘듦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을 물러나지 않고 지켜왔다. 때로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들의 얼굴을 생각하곤 한다. 꾸준히 한 자리에서 거기가 최전선이라는 듯 물러서지 않고 맞서 버티는 일.(나는 무언가를 이루는 일보다 버티는 일이 더 대단하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그 이후에 따라오는 '달인의 경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성공'하기 위해, 혹은 '최고'가 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단연코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순한 생각과 선택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집념과 집중은 그들의 삶을 가치롭게 만들었다. 그 꾸준함에 대해 나는 때로 머리가 숙여질 때가 많았다.


무언가에 대한 집념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한 가지의 볼륨을 만들어내는 삶에 대해 새해 벽두에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말이다. 꾸준한 집념으로 한 가지의 볼륨을 만들어내는 일은 거창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 평생에 잘 하지도 않던 운동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려보게 된다. 지금보다는 조금 체중을 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운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체중 자체보다는 건강의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었다. 식습관을 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전반에 걸친 내 몸의 상태와 습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꾸준하게 한다는 것의 깊이를 조금 경험하게 되었달까. 그리고 무엇에 대해 꾸준하다는 것, 누군가에 대해 꾸준히 사랑하게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며 생각의 외연을 확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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