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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26. 2016

생각 일기

2016. 09. 26. (월)

글로부터 멀리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와 심신의 피로와 생활에 잡아먹힌 시간의 틈에서 낮게 기어 다니며 또한 지진의 공포에도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으로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역시나 나는 성실한 인간은 아니다. 꾸준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간은 못 된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과도 거리가 먼 인간일 것이다. 꼴도 갖추지 못한 소설이었지만 한 주에 한 편씩 써보겠다고 마음먹고 공언까지 하고도 얼마 못 가 좌절을 하고. 이게 글이 되겠는가, 싶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이나 브런치에 들어와 봤을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흐른다. '왜 당신은 나의 글을 읽어주지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할 때는 언제고 내 글을 읽었다는 말에 그렇게도 부끄러워 방 문을 쾅 닫고 싶었던 순간을 지난 것도 그 하루들 중에 포함된다. 나는 도무지 대책 없는 인간일까. 또 어떤 하루에는 이미 끊어진 인연들의 파편이 머릿속을 헤집어놓기도 한다. 바쁘다 느끼면서도 진정으로 몸이 바쁜 것은 아니었을까.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는 사람이든 장소든 시간이든 왜 이렇게 할 말이며 할 생각이 많은 것일까. 아마도 몸이 덜 힘들고 덜 바빴나 하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는 이유이다.


최근 신작인 우디 앨런의 영화 두 편과 김민정의 시집과 로맹 가리의 소설과 집 근처의 바닷가와 헌책방과 번화가의 백화점, 그리고 단정하고 깔끔한 핸드 드립만큼이나 미소가 순박한 바리스타가 있는 자주 가는 카페. 이런 것들이 주가 되어 안락한 침대 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면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이고 거짓일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 라디오에 내 생각과 생활에 대한 사연을 보내 방송에서 읽힌 적이 있었다. 상품도 하나 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생은 그 사연이 방송에 나오는 것을 듣고 한 마디 했다.

"와, 저런 거짓말을 쓰다니. 저거 다 뻥인데."

녀석은 놀리듯 웃으며 말을 했지만 난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저 말이 때로 뼈아프다. 그리고 난 지금도 내가 글로 허세를 부리고 뻥을 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생활은 조용히 침잠한다. 그렇게 들쭉날쭉 어쩌면 나도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림도 없이.


글로부터 멀리 있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 글이 나를 부르는 순간이 있다. '내가 써놓은 글이 어떤 형태로 든 간에 생명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 때에는 결국 누군가가 읽어주고 더 많이 읽히게 된 계기가 보일 때인가 싶다. 읽히지 않는 글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 나는 내 글이 잊히길 바란다. 그러나 잊히기 위해서는 일단 읽혀야 한다. 읽히지 않는 글은 잊힐 수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사라지지 못하듯이.


아주 바쁜 날이었다. 급하게 돌아가는 업무 중간에 낯선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있었다. 보통은 낯선 전화를 잘 받지 않는데, 업무상 올 전화가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금방 받았다. 뜻밖의 내용이었다.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걸려온 전화. 예전에 써두었던 서평 한 편을 통영의 지역 신문에 실어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브런치에서 발행했던 글 그대로 말이다. 자그마한 공간에 내가 쓴 글이 아주 작은 신문에 내가 좋아하는 동네 통영에서 실린다는 것이, 누가 읽을지 알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마음속이 복잡 미묘해졌다. 아득하게 머릿속 회로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출간하자는 제의도 아니고, 그것보다 더 기쁜 일도 아니지만 그런 조심스러운 말투의 제안은 내게는 어떤 출렁임과 같았다. 잊고 있었고, 더 많이 무시하고 있었던 어느 파편들이 글이라는 형태로 브런치를 통해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한동안 까마득하게 모른척했다. 별 일 아니다. 어찌 보면 정말 별 일 아닌 이 전화 한 통이, 내게는 약간의 울림을 안겨주었다.

통영 "한산신문"에 실린 서평. 브런치를 통해 발행했던 글이다.

https://brunch.co.kr/@navillera/150


글에서 멀리 있었다고 생각한 어느 순간의 어떤 사건과 또 어떤 생각은 글에서 멀리 있을 수 없음을 콕 찔러 보여준다. 로맹 가리의 소설도 그러했다. 헤세의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크게 다가왔다. 시적 감수성을 녹여낸 짤막한 소설은 몽환적이나 어떤 일보다도 날카로운 현실을 담고 있었다. 아직 많이 읽어야 함을, 아직 많이 부족함을 알게 되면서도 이 작가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러고 보면 나의 20대의 독서 목록에 소설은 없었다. 시는 있었어도, 소설은 없었다.

글로부터 멀리 있었다. 멀리 있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인사하지 못한 계절은 아무 말 없이 휘리릭 지나가버렸고, 지나가버린 시간들은 더 이상 곁을 주지 않는다. 미리 인사를 해두어야 했다. 무얼 해도 조금은 결핍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 가을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지진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리하여 우아하게 생존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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