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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Apr 11. 2016

평화는 길지 않다.

유독 부고(訃告)가 많았던 어느 날.

"별 걱정 없이 한 세상을 잘 건너갈 수 있으면 되지 않겠니."

엄마의 바람은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 다름이 없다. 대단한 일을 하거나 위대한 사람이 되거나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 부모가 아니었다. 초중고를 거치면서도 성적 문제로 내게 잔소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엄마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여태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자식을 금쪽같이 아끼면서도 다만 태어났으니 한 세상 별 탈 없이 건너가기만을 바라는 이 '절제된 욕망'이 때로 삶에 부담을 느끼는 내게 힘이 될 때도 있었다. 요즘에 든 생각은 '절제된 욕망으로 생각을 고쳐 매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많은 자기 고뇌를 겪었을까.'였다. 저 문장은 당신은 별 걱정 없이 한 세상을 건너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의 반증일 것이다. 또한 '별 걱정 없이'라는 문구에는 엄청난 양의 욕망이 함의되어 있다는 것이 문득 뇌리를 치고 갔다. 엄마는 욕망을 절제'한' 것이 아니라, 절제'당한' 것이었고 요즘도 그 절제'당한' 욕망을 절제'한' 욕망으로 인식하기 위해 불상 앞에 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대 엄마는 평생 종교를 이용해왔고, 이용 해갈 것이다.


"별 걱정 없이 한 세상을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엄마의 바람처럼 한 세상 편안하게 건너가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이지 않을까 안도했던 적이 있었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순간에 나는 때로 저 문장을 곱씹어보기도 했다. 별 걱정 없이 한 세상을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많이 아프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이 되고 나서, 알았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화가 그렇게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별 걱정 없는 순간이 얼마나 대단한 시간인지는 몰라도, 나는 요즘의 나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안부를 물으면 "별 걱정 없이 산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많은 물음들이 도사리고 있고, 예민한 촉수를 드리우고 있으며 때아닌 곳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별.걱.정.없.이.산.다.

이 정도면 별 걱정 없는 것이 맞겠다. 먹고사는 문제와 건강 문제에서 내 눈길이 닿아야 하는 모든 부분에서 별 문제없으면 별 걱정 없는 것이겠다 싶었다. 다시 말해 별 걱정 없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해외여행을 나갈 수 있다는 뜻이며, 먹고 싶은 음식을 건강상의 이유로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또한 내가 번 돈을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나누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는 뜻이며, 가족끼리 통화할 때에 아주 편안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휴일에 혼자 책을 보고 차를 한잔 마실 때에도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걱정거리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과 차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을 직접 의식해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흔한 행복이라 하더라도 누리지 못한 박탈의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진정한 행복과 일상의 평화라는 것이 그리 하찮은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안다. 


그리하여 별 걱정 없이 한 세상 건너간다는 뜻은 "관계"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일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안에서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사이(間)'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관계 안에서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그리하여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그 관계로 인하여 자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자유는 탈출 불가한 자유이거나, 스스로가 자유를 박탈한 경우이므로 스스로 그 관계를 편안하게 만들거나 관계가 편안해지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 개인의 삶에 평화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찾아온 평화도 언제 무너질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매 순간이 소중하다. 평화는 길지 않으므로.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을 부여잡으며 나른함에 겨워하다가 누군가의 부고(訃告)를 듣는다. 누군가에게는 한 세상 마무리 짓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겠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평화가 깨어지는 신호음으로 들렸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일이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은 사실 모든 인간이 겪는 모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사이'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자 한다. 그 '사이'에서 조금씩 삶의 의미와 재미를 느끼고 또한 살아있음을 증명받기도 한다. 그 증명의 시간, 평화의 시간은 길지 않다. 우리의 이 시간, 이 평화가 조금 더 밀도 있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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