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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Feb 07. 2017

용눈이 오름:당신의 생각이 머무는 곳.

그는 용눈이오름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만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확신해 보였다. 여름의 용눈이오름은 시원한 바람만큼이나 햇살이 따가웠다. 아주 힘든 시절에 혼자 제주를 무작정 와서 용눈이오름에 올라 낯선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파르지 않은 길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나무는 없고 풀만 가득한 구릉 같은 길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풍경인 건가 싶었다. 키가 큰 풀 사이를 천천히 오르다 보니 마지막 순간에 경사가 제법 가파른 길이 나왔다. 대신, 우리에게 펼쳐진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용눈이 오름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에는 김영갑 작가의 심정을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이해가 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가시거리가 완벽하지도 않은 상황이 더 매력적이다. 무언가에 가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 장소에서의 계절은 한겨울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명태처럼 자연스러웠다. 



탄성이 나오는 장소에서 당신과 나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소멸되고 감성이 펼쳐지는 시간. 우리가 내려다본 것은 제주의 어떤 풍광일까, 우리가 느끼는 감성이 반영된 모양일까. 어떤 장소에서 셔터를 누른다는 것은 마음에 담고 싶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다만, 셔터를 신중하게 누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구 누른 셔터는 아무렇게나 찍힌다. 그것은 찍은 사진이 아니고 찍힌 사진이다. 살아가는 일에서 피동 성은 제거되면 될수록 좋은 일 아닐까. 용눈이 오름에서 잘린 한 토막 시간은 아름다웠다.




* 장소 : 제주도 용눈이오름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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