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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경계선 Sep 09. 2015

6. Nothing without you

당신 없인 난 아무것도 아니죠.

언젠가의 순간에, 아무것도 손에 쥐고 싶지도 않을만큼 무기력했을 때가 있었다.

준비하는 모든 일은 언제나 실패를 거듭했고 '사랑'이라 부르고 싶었던 사람도 얼굴을 달리 해버렸을 때.

그리하여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가을에 시작한 것들은, 가을에 이루어야 하는 것들은, 하나도 이룬 적이 없다.

가을은 내게 언제나 상실의 계절이었고, 나는 한번도 가을에 수확해 본 적이 없다.

누구나 풍요로울 가을에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들으며 설경을 상상했다. 차라리 격정이고 차라리 뜨겁고 차라리 휘감아도는 감정을 구하는게 낫겠다 싶었지.

무릎을 휘청이며 딛고 서 있는 이 곳에서 마음을 툭 놓아버리고 엉엉 울었을 때 이 곡이 귀에 들어왔다.

아티스트 이름도 생소하다, Vienna Teng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얼굴을 보니 동양인인데 아니나다를까 중국계라고 한다. 사실 이 뮤지션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것은 다시 한 계절이 지나 정신을 차렸을 때였다. 스탠포드 공대를 다니고 괜찮은 기업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이렇게 곡을 쓰고 부르고 그랬단다. 그러다 지금은 회사도 그만두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한 활동범위나 내용은 잘 모른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느낌에 의지했고, 가사도 모르고 그냥 들었다.

읖조려 말하듯 무심한 가사와, 자유롭지만 단정한 음색, 그리고 약간의 억제된 슬픔 그리고 알 수 없지만 목소리에 '기다림'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의 상황이 반영된 감정이라 믿고 있다.) 노라존스 등과는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또 한 계절이 지나 이 곡이 들어 있는 음반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내발매가 안되는 음반이었다. 해외에서 구매해야 하는 앨범이었다. 그리하여 '익숙한 절망'을 음악에서도 느껴야 했다. 아니, 그리하여 이 곡은 내게 더 귀한 곡이 되었다. 유튜브가 아니면 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 재작년 가을에 이 음반을 선물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이 곡을 처음 들을때의 그 상실이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다. 또 다른 느낌으로 들리기도 했다. 한동안 차안에는 이 음반만 줄기차게 들었다. 가을, 상실할 것이 많고 여전히 내게 수확은 어려운 계절. 상실의 가을을 기억하며 이 곡을 들으려 다시 CD를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