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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Sep 10. 2015

서른, 영화 <비포 선셋>이 좋은 나이.

당신은 비포 시리즈의 세 영화 중에 어느 편이 가장 좋은가요?

** 이 글은 리처드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의 세 영화(<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 <비포미드나잇>)는 내게 가장 소중한 로맨스 영화이다. 이 영화만큼 멋진 로맨스 영화를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고전 중의 고전 <카사블랑카>를 필두로 <러브 어페어> 등의 영화 등도 내가 아끼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로맨스 혹은 일상에서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로맨스에 이만한 영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감독의 영화는 사실 다 좋다. <버니>라는 블랙코미디 영화도 마음에 들었고, <보이후드>는 진정으로 역작이었다.(12년간의 촬영.) 나의 영화에 대한 취향은 액션이나 블록버스터 혹은 공포물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그저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그려놓은, 보통의 사람들이 지루해할 만한 영화들이다.(사실 나라는 사람이 좀 지루한 편이긴 하다. 이런 영화 취향도 30대에 확연히 정해졌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 세편의 로맨스 영화에서 주인공 두 사람의 "대화"에 모든 초점을 두고 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의 흐름과 그들의 눈빛 속에 사랑은 어떻게 생겨나고 진행되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하는 동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매우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대사는 너무도 풍부하고 그 대화의 행간에는 읽을 거리와 생각 거리가 많아서 몇 번을 돌려본 영화들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멋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9년을 단위로 개봉을 했으니 주인공 역을 했던 에단 호크, 줄리 델피의 얼굴에 들어선 나이도 쉽게 가늠이 된다. 실제로도 그렇게 촬영하여 개봉을 하였다. 픽션이지만 실제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설정은 영화에 대한 몰입을 높였고, 세트장이 아닌 실제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대화나 일상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제시(에단 호크 분)"나 "셀린(줄리 델피 분)"을 기다리게 한다. 아니, 나도 "제시", "셀린"을 만나고 싶어 질 정도이다.


하룻밤의 격정 혹은 열망과도 같았던 사랑을 경험한 20대의 젊은 남녀는, 기차에 다시 몸을 맡기고 헤어진다.(<비포선라이즈>) 3년 뒤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엇갈린 인연으로 만나지 못했다.(<비포선라이즈>의 끄트머리에서 '저 둘은 만났을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극장에서 나왔고 9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알게 된 결론은 <비포선셋>에서 밝혀지는데, 저 둘은 만나지 못했다는 것.) 나는 이 자연스러운 영화의 진행에 매료되었다. 그렇다,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만나는 사랑 영화는 판타지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정보)


다시 못 만나는 현실에서 그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현실이므로.
혹독한 현실 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어야 하므로.


남자 주인공(에단 호크) "제시"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길고 긴 에움길에 들어선다. 그녀와의 일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목적은 그녀를 찾기 위한 것. 어디선가 그녀가 나의 책을 읽고 있으리라는 믿음, 막연한 희망, 그러나 꼭 그녀를 찾겠다는 의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우연한 만남을 쉽게도 '운명'이라 부르고, 아찔한 욕망과도 같은 하룻밤의 일을 '사랑'이라고 쉽게 말하는 젊음이 전부는 아니라고 영화가 말해주는 듯 싶었다.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디에든 존재할 것으로 믿고.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정보)


그들의 재회는 충분히 그럴만했다. 나는 그 재회의 장면과 과장되지 않은 그들의 눈빛에 매료되었다. <비포선셋>에서 '제시'는 '셀린'을 만났다. 그러나 제시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가 약 2시간 정도 남았고. 영화는 그 2시간을 그대로 러닝타임으로 다 써버렸다. 영화 속의 어떠한 설정도 없이, 시간을 뛰어넘는 장치도 없이, 그대로 그 둘의 대화와 눈빛으로 다 채웠다. 물론 프랑스 파리의 골목과 여러 장소들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덤이다.


30대가 된 둘은 각자 다른 이와 이미 결혼을 했고, 생활과 현실에 휩쓸려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으며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후 기쁨과 좌절과 원망을 함께 내비쳤다. 그들에게 이제 무엇이 남았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셀린과 제시는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제시는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서 돌아갔을까, 셀린은 어떻게 했을까. 알듯 모를 듯 제시는 셀린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영화는 막을 내렸고, 다시 우리는 9년을 기다렸다, <비포미드나잇>을 2013년에 개봉하기 전까지.



사랑을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어디까지 해봤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오직 그 한 번의 강렬했던 만남으로 끝까지 그 존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9년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힘일까. 우리는 그렇게 해 본 적 있는가. '이런 사랑이 실제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곳곳의 모든 설정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매우 '계산'적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영화적 장치에서 감독은 최대한 그들을 실존적으로 그렸다. 그들은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다.

강렬했던 느낌으로, 그 사랑을 지키고 찾아내고, 또 담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상대를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의 서로를 놓치지 않는, 이런 것들을 보여준 영화가 <비포 선셋>이었다. 우리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30대의 사랑, 비포 선셋이 모범답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범답안이라는 단어가 좀 별로인데,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2004년에 개봉했을 때 나는 겨우 20대 초반이었다.  그때에는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30대에 다시 보게 되었을 때에는 역시나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30대가 되어 다시 보게 된 <비포 선셋>은, 그들이 결혼을 했을지 함께 살게 되었을지 이후 어떤 지질한 현실들을 겪게 될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다.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잊지 않고, 끝까지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 재회, 그 자체가 의미 있었다.


비포 시리즈 모든 영화가 모두 괜찮았지만, 나는 여전히 <비포 선셋>에 머물러 있다. 그들이 기준이 된 시간 속에 나도 존재하는 느낌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비포 선셋>의 마지막 장면에서 셀린이 제시에게 불러준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가을에 당신의 사랑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셀린과 제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https://youtu.be/6jfoYwxnW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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