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잘 잤으면 좋겠어.

친구에게.

by 경계선

마음을 소진하고, 생각도 소진되고, 몸은 이미 무너졌지만.

잠에 들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아서,

나의 마음은 미래에 있고, 과거에도 있어서,

현재의 나는 허깨비라 잠을 자는 게 의미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이 순간에도 깨어있기만 하는 허상 같은 내가 있다.


몸과 정신이 산산이 갈라지는 듯하고

손발이 말을 안 듣는 것 같을 때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약 먹으면 다 좋아진다. 망설이지 말고 병원 가봐. 응급할 때 먹는 약도 주시거든. 정신과는 꼭 필요한 곳이야."

나는 아직도 정신과에 가보진 않았다.

두어 달을 좀 자고, 기침을 좀 하고,

더 오랫동안 누군가를 좀 미워하고,

세상의 더 큰 일들을 걱정하면서,

(이를테면, 트럼프가 벌인 전쟁이나. 가파르게 올라가는 주가의 향방이나. 국무회의나 타운홀미팅 같은 정부의 뉴스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는 그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나는 올 겨울을 완벽한 속세에 살았다.

음악도 거의 못 들었고, 책은 더 못 읽었고,

글은 한 글자도 못썼다.

나는 그저 엄마와 싸우고, B형 독감과 싸우고,

내 안의 가장 뾰족한 마음과 길고 긴 싸움을 했다.

나는 철저하게 패배했지만, 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정신승리라도 해야 다가오는 봄에 품을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게 정신승리는 정신과보다 가까웠다.

이런 내가 살아남았다. 나는 이제 과거의 내가 아니다.

정신승리로 살아남은 내가 다음의 나를 이어갈 것 같다.


이민진의 <겨울의 윤리>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해진'이 죽은 것처럼.

해진이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다른 삶을 꾸려가는 것처럼.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속세,라고 말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문장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어디에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는 그 말이,

도리어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붙들어 메고 현재에 나를 재울 것이다.

나는 오늘 편안하게 잠들 것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시간에 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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