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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Oct 19. 2015

"봄날의 책방"을 아시나요?

남해의 봄 같은 따뜻함과 편안함으로 귀퉁이에서 조곤 대며 이야기하는 곳

"봄날의 책방"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을 방문하려 일부러 통영에 들렀다.


통영은 내게 매우 특별한 도시이다.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의 흔적이 있는 곳이며, 시인 유치환의 발자국이 있는 곳이다. 시인 백석의 발길도 닿았고 그의 시로도 남아있는 도시이다. 또한 미술가 전혁림의 입김과 이중섭의 붓 자국도 지나갔던 곳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데, 나의 마음을 붙들었던 결정적 이유는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통영은 나의 어느 시간에 오롯이 기억되어 있는 작곡가 윤이상의 도시이다. 윤이상이라는 작곡가에 대해 찾아보며 가슴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를 여러 번 반복했던 어느 시간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윤이상과 같은 작곡가가 또 있을까를 찾아보다 포기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로, 울산시향의 김홍재 지휘자가 독일 유학시절 윤이상을 사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산시향에 애정을 가지고 정기연주회에 자주 가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도 큰 몫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언젠가 김홍재 지휘자는 윤이상 작곡가의 곡 중 알려지지 않은 몇 곡을 국내 최초로 울산시향과 함께 초연을 했다. 그때의 그 떨림과 무언가 모를 애잔함, 그리고 윤이상의 큰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던 기억도 있다. 그렇다, 나는 가끔 김홍재 지휘자의 어깨너머로 윤이상을 느낄 때도 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에서 살아 남아있는 지휘자 중에 윤이상의 곡을 가장 정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그일 것이라 했다. 아직 기회가 되지 않아 "통영 국제음악제"를 가본 적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언제나 가장 위급(?!)하고 바쁜 순간에 국제음악제를 하는 바람에 먹사니즘(!)에 굴복하여 음악제를 매번 놓쳐야 했다. 아무튼 나는 이 작은 소도시에 이렇게 걸출한 예술인들이 배출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 있고 품격 있는 도시이다. 나는 그들을 품었던, 그들이 사랑했던, 그들이 밟고 지나갔을, 통영의 거리들을 사랑한다.


서설이 너무 길었지만, 통영은 그만큼 이야기할 것이 많은 도시이다. 그런데, 그 통영이라는 도시에 또하나 멋진 일이 생겼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최근에 통영에 가지 않은지 좀 되어 그랬을까, 통영에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이라는 곳이 생겼다는 것을 몰랐다. 소위 독립출판 및 동네서점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나는 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일에 언제나 반대 입장이었다. 책과 음악, 문화를 다루는 어떤 생산적인 일을 '상품'과 '자본'의 논리를 강하게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일 같았다.

JTBC 뉴스에서 가수 이승환이 그리 이야기했다. "음악을 감상에서 소장으로, 그리고 다시 소비로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책도 그리된 것 같았다. 책은 지식이나 정보 '전달자'의 역할로 전락해버리고, 책을 사기 위해 가상의 공간에서 '주워' 담는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직접 손에 들고 활자를 밑줄 그으며 읽을 책 조차도 우리는 직접 만져보고 사는 일을 포기 왔으며, '싸다'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퍼담았다.

그렇게 서점이 사라졌다, 음악 감상이 사라지듯이.


'서점'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만나는' 공간이 되면 어떨까.


책방 주인은 자신의 생각과 기호대로 책을 가져다 놓고, 책방에 오는 사람들과 책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람끼리, 혹은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 되면 안될까. 이런 생각을 제법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문화공간' 혹은 '살롱'으로서의 서점은 뜬구름 잡는 생각에 불과할까.

통영 "봄날의 책방" 입구


"봄날의 책방"이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그런 책방. 책방 주인은 '사장'이기 이전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팔기 위한 것보다 책과 이야기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많은 책은 없다. 그 흔한 자기계발서 한 권 없다. 그렇지만, 빼곡하게 꽂혀있는 생각들을 훑어보는 것으로도, 왜 책방 주인이 이런 책들을 골라 꽂아두었는지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도 나는 이미 책을 한 권 읽은  듯했다. 장사는 될까? 물론 잘 안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책방의 곳곳에서 풍기는 것들에서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목마른 마음을 안고 들어와 따뜻한 햇볕 한 그릇 마시고 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은 아니었을까.



내가 산 책 두 권

책방 주인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책 두 권을 골라 나왔다. 그는 두 권을 고른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역시! 이 시집을 고르실 줄 알았어요. 가을에 읽기 좋은 시집을 몇 권 골라서 놓아 두었는데, 요즘 이 시인이 핫(!)하죠. 하하. 요즘 저도 눈여겨 보고 있는 사람의 시집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처음 사 가시는 거예요."


그가 학교 다닐 때 교양수업으로 사진 이론 수업을 들었다 했다. 그 말이 제법 부러웠다. 나는 사진에 대해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으므로. 사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었다. "어! 저도 니콘으로만 찍어요. 니콘 쓰시네요."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도 제법 재미있었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마음을 놓고 주절주절 수다를 늘어놓았던 것 같다. "네. 저도 니콘만 써요. 색감이 마음이 들어서요. 그런데 사실 쓰다 보니 이것밖에 못 다뤄 그럴 수도 있어요."라고.

몇몇 사진작가들의 책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라는 책을 들고도 한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책도 살까 말까 망설였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남해의 봄날 책갈피와 책 앞에 찍어주신 스탬프


서점이 왜 통영에 있는지도 알 것도 같았다. 지방이고 남쪽 끝에 자리 잡았지만, 이 자그마한 곳에서 문화와 예술이 제법 오롯하게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이 통영이었다. 충분히 어울렸다. 맞은편에 위치한 소박한 '전혁림 미술관'과도 어울렸고,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윤이상 기념관'과도 어울렸다. 포근한 마음으로 한참을 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전혁림 미술관 귀퉁이에 앉아 그림을 곱씹으며, 그가 생각한 통영은 어떤 것이었을까, 통영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도시인가, 혼자 충무김밥을 입에 넣으며 생각을 했다. 뱃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 주었던 충무김밥처럼 담백하고 소박한 도시, 그 진하고도 행복한 여운이 제법 오래도록 머물렀다. 통영이라는 '책'을 한 권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책방들이 자꾸자꾸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삶이 조금 더 느리게 흐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책 한 권을 읽어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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