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년기 part3

교실 이데아

by navygrey

#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의 가사


학업보다는 곁눈질해 가며 방황했던 고2와 고3 시절.

내가 빠져있던 분야는... 엉뚱하게도 고2 때는 '시(詩, poetry)', 고3 때는 '골프'였다.

내가 왜 방황을 했었는지 당시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이를 한참 먹고 나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계기가 아마도 앞서 고1 때의 성적이 계속해서 유지되지 못한 것에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별 의미도 없는 1등 타이틀을 계속 지켜내지 못한 게 뭐 대수라고 그 자체로 학업(성적)은 내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종의 현실부정이자 도피였던 것. 더 나아가 스스로 모자란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엉뚱한 방법을 썼다. 열심히 해서 성적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성적에 관심이 없고,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일 뿐이라고 서사를 만드는 것. 백해무익, 아니 그냥 자해하는 수준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방식으로 말이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성적이면 상위권인 거니까 열심히 하는 남들보다도 내가 더 우월한 거야.'라는 식으로 내 편의대로 생각하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특정 계기들로 인해 무언가에 무작정 빠져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혀 돌파구가 될 수 없음을 애써 외면한 채 열예닐곱의 나는 전혀 안전하지 않은 나만의 회피처/도피처를 찾아 헤맸다. 중학교 때 악기를 배우다가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었던 몽니가 건강하게 해소되질 못해서였는지 다시 억지를 부리며 고집을 이어갔다.


# 느닷없이 되고 싶던 문학소년


국어 과목과는 별개로 존재하던 문학 과목 수업. 단순히 여러 교과 과정의 하나가 아니라 내겐 문학 자체를 마주하게 되었던 계기였다. 우리나라의 말과 글이 주는 묘한 매력을 새삼 느꼈던 걸까, 특히 '시'에 꽂혔다. 문학의 한 형태로서의 '시'가 주는 매력도 대단하지만, 의미를 함축하는 방식과 절제 및 정제된 표현으로 다듬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부터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가 얼마든지 재해석, 재생산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당시의 나에겐 '이상'과 '기형도' 같은 시인이 영화 비트의 정우성보다도 멋있게 느껴졌었다.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았었지만 나름 지적 허영과 허세를 부리느라 이런저런 습작도 해보면서 평소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 어려운 한자어들을 찾아 일부러 사용해 보는 등 소중한 고2의 시간 상당량을 그렇게 소진했다. 그나마 아주 낭비만은 아니었던 건... 그해 00 대학교 주최의 전국고교백일장 대회가 있었는데 제출해 본 습작물이 입선되었던 것.(큰 상도 아닌 장려상에 가까운 수준) 이후로 무슨 자신감과 확신이 생겨서였는지 진로를 문학 쪽으로 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나 이윽고 고3이 되던 해의 설날(구정), 큰집에서 이번엔 큰아버지까지 가세하여 이르시기를 "인문학은 비전이 없다고 보는데(정확히는 인문학은 죽었다고까지 표현하셨던 것으로 기억...) 문학 쪽으로 전공을 하고 싶다고? 그건 나중에 취미로 해도 좋지 않을까? 우선 좋은 대학, 상경계 쪽으로 가는 게 취업에도 유리하고 그럴 텐데 말이야." 현실적으로 남자가 스스로 밥벌이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취업 쪽으로 생각해서 준비를 해야지 예술 분야는 가급적 진지하게 접근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건 아니란 생각에 그 뒤로는 '시'를 가까이하지 않게 됐다. 또 한 번 조용히 현실에 굴복하고 말았다.


# 한국의 타이거우즈, 남자 박세리


운이 좋았던 고1, 문학소년이 되고팠던 고2를 지나 고3에는 내적 방황과 갈등이 더 고조됐다. 그 끝은 무기력이었다. 모든 게 싫고, 귀찮고, 하찮고... 그냥 답답했다. 뭔가를 하기보다는 틈나는 대로 그냥 누워있는 식이었다. '야(간) 자(율학습)'도 모자라 집에서 밤새워가며 공부하는 고3의 모습이 내겐 없었다. 그런 모습이 한심하고 또 한심했는지 부모님은 뭐라도 하는 게 좋겠다며 운동이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셨다. (집이 부유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이용하시는 연습장이라 헬스장 비용 정도 추가 부담하고 배움) 프로선수 준비할 것도 아니어서 그냥 몸을 좀 움직이라는 차원으로 배우기 시작한 골프. 가만히 있는 작은 공을 때려대는 그 쾌감이 운동 여부를 떠나 매우 재밌었다. 나이도 어렸고 몸도 유연했던 때라 잘 배워두면 나중에 좋겠다고 하여 레슨도 받고,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필요 이상의 운동을 하다 보니 또 악기와 시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이번엔 골프에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금(방)사(랑에) 빠(지는)'가 따로 없다. 필드에 나가보지도 않아 놓고 그저 동네 실내연습장에서 연습만 했던 고등학생 주제에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다고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박세리, 타이거우즈처럼 나도 그리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려했었다. 하지만 되지도 않는 무리를 해서였을까, 준비운동도 없이 마구 휘두르던 스윙, 그리고 수도 없이 뒤땅을 때려댄 결과... 허리, 척추에 이상이 생겼다. 몸이 좋아지는 운동을 한 게 아니라 미련하게도 몸을 망치는 학대를 했던 거다;;; 그리고 운동이야말로 프로로서의 성공 여부는 타고난 피지컬과 멘털이 엄청 중요한 분야인데... 타고난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그렇고 시작해 보기엔 너무 늦은 시기였음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스스로 그 헛된 꿈을 접었다. 그저 고3 수험생이라는 부담을 직접 마주하지 않으려 엄한 곳에 눈길을 돌렸던 것임을 당시엔 인정하지 않았고 몰랐었지만... 난 어쩜 이렇게도 비겁했을까...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