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05년 1월 28일(당시 나이 20대 중반)
* 무려 20년 전인 2005년, 제 나이 20대에 머물러있던 시절에 쓴 글이 우연히 발견되어 기록에 남길겸 게시해봅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청소년이 되었을 만큼 모든게 변한 입장인데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싶네요.
- 친구로부터 추천받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 대한 미감상 후기 - 2005.1.28.
남과 여, 연애와 사랑 등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영화라며, 덧붙여 말하기를 아주 잘 만들어진 빼어난 작품이라고... 제목만 들었을 때는 ”봄날이나 복날이나 가고 오고, 또 때되면 다시 가고 오고... 그러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봄날은 순간이다’와 같이 정확성을 높이려는 시도에서 오는 표현이 되었다면 어쩐지 영화제목으로서의 느낌은 아니다 싶었을테니...
아무튼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이 영화를 아직 못 봤다. 아니, 보고싶지 않았다. 스틸사진과 내용, 거기에 노희경 작가가 쓴 영화 리뷰(제목 : "여자에게 소년은 부담스럽다")를 읽고서, 나도 해당 내용으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 연출할 수 있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작품성이 어쩌고 저쩌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글쎄 노희경 작가가 얘기하는 여자와 소년의 관계... 제법 새로울 것도 없는데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정확하게 맞는 얘기이면서도 또 엄밀하게는 완전히 틀린 얘기다.
적어도 난 노작가의 글을 읽고서, 억지가 개입하고, 자기합리화적 논리가 난무하며, 지나치게 자기본위적 과거시제형의 어조를 느꼈다. "순수가 사랑을 방해한다. 이를 모르는 자들이 순수를 동경한다. 어린 남자(또는 여자), 다시 말해 소년과 소녀는 각기 여자와 남자 앞에서 이기적이다." 작가한테는 미안하게도 나는 참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다.
영화에선 상우라는 캐릭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는데 결국 이런 내용이다. 마치 진리이고 순리인양 사랑에 순수함과 열정, 더 나아가 목숨까지 바치는 미성숙한 존재와의 결혼은 무모하고 불가능한 것이며, 연애상대로만 인식케 하려는 것이자 영화의 의도를 정확히 뭐라 단정짓긴 어렵지만, 상우의 불우한 환경과 어린 나이 등의 설정은 도리어 영화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 들여다 볼 때 설득력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어디까지나 개인차다. 나이가 많아도 소년(녀)같은 사람이 분명 있기 마련이고, 사랑에 대한 해석이 각기 너무나도 다르니깐 말이다. 현실의 문제와 부딪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숙하게 적당히 순수를 배제할 줄 아는 것이 결혼의 결실을 맺고, 사랑을 지켜나간다는 논리이지 않은가. 그래, 내가 아직은 남자라기엔 소년에 가깝고, 나이가 아직은 많지 않은 입장이라 그저 노작가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설령 내가 이러한 생각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오고, 생각이 바뀐다 해도 이런 식의 말을 하진 않을 것 같다. 이데아의 존재 이유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들어졌음에 있지 않고 오히려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현실에 가깝게 하려는 바로 그 시도에서 얻는 환희같은 것에 있지 않을까? 상우에겐 사랑이 전부라고 결론짓고, 이를 부담스럽게 보는 은수의 시선, 노작가의 에세이에서 단언에 가까운 소년과 여자 사이의 괴리... 그냥 꼭 내가 공격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못봐주겠다. 그네들도 이러했던 적이 있다며 자신의 얘기에 공감을 끌어내려는 시도조차... 혹시라도 반발할 대응에 앞서 성급하게 일반화한 논리 상의 오류를 불식시키고자 꾀어낸 사기극이 아닐까 싶다.
난 그냥 ‘한 마음’이고 싶다. 곧게 뻗어가는 마음이 되지는 못할 지라도, 꺾임없이 향해나가는 그런 마음이고 싶다. ‘순수함’이 사랑에 방해 또는 장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순수’나 ‘사랑’이란 감정은 그 자체로 ‘열정’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생명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비롯한 현실의 벽 앞에서 부서지고 깨져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계속 살려낼지 죽일지를 따져보며 다룰 일이거늘 부담이라는 것이 대체 웬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