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나에게 '잔인한 4월' 이라던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 보다도 훨씬 더 잔인한 계절이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흠~ 원장님 목소리 들으니까 안 되겠는데요, 제가 조만간 원장님 뵈러 올라가야겠어요~"
수화기 너머로 학원 운영할 때 4년 넘게 함께 일했던 실장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기분 좋은 훈풍을 가슴 한편에 일으키면서 잠시 온전한 나로 돌아오는 반전이 찾아왔다.
다음날 바로 점심을 같이 먹자면서 천안에서 평택으로 달려온 그 친구는 나보다 5살 아래였지만 학원에서 4년간 함께 일하면서 절친만큼 가까워졌고, 학원을 정리하고 나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작년 겨울 평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비록 거리는 좀 멀어졌지만 누구보다 자주 연락하고 만났던 동생 같으면서도 오랜 벗처럼 편안한 친구다. 그 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담소들이 우울감으로 지하 100미터를 파 들어가고 있던 나에게는 잠시나마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
나의 백수 도전기는 사실 처음부터 모험적이었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 없이 잘될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만으로 아니, 자만심으로 시작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과정을 겪는 것일 수도 있겠다.
깜빡거리는 밑바닥 체력의 배터리를 충전시키기 위해서는 '걷기'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는 걸 깨달은 건 그나마 위안이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정도 돌아도 지쳤었는데 조금씩 그 거리가 늘어나더니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마을 한 바퀴를 돌아도 괜찮을 정도의 체력이 붙기 시작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여름의 끝자락에서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의 기분 좋은 느낌을 맞대고 걷노라면 불끈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솟기도 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백수가 할 수 있는 하루 일과 중 그나마 뿌듯한 성과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나에게는 '걷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걷다가 만나는 석양은 늘 아름답다]나의 백수 생활을 견인해야 할 핵심인 주식은 9월 내내 코로나 후유증에 쇠약해진 나의 심신처럼 맥없이 꼬꾸라지기를 반복하며 바닥을 뚫을 것처럼 무섭게 내리꽂고 있었다. 9월 말 경에는 내 종목이 사경을 헤매다 -30% 가까이 떨어지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쌩쌩하던 반려견 '쥬트'가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다.
10년 동안 함께 살면서 먹이를 마다하거나 간식을 마다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던 우리 가족에게 쥬트의 단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잠시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하루를 흘려보낸 것을 밤이 되어서야 후회하게 되었다. 온종일 물도 먹지 않는 '쥬트'를 밤새 지켜보면서 증상에 대한 검색을 해보고 반려견을 키우는 지인들에게 문의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두려운 답변뿐이었다. 곧 '쥬트'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에 밤잠을 설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물병원으로 직행하여 입원을 시켰다.
백수가 된 지 겨우 두 달이 되어가는데 여러 가지가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리는 좌절감이 들었고, '쥬트'까지 아파서 마음이 심란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다행히 쥬트는 입원 4일째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몸은 살이 빠져 쇠약해졌지만 눈빛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쥬트는 언제 내가 아팠냐는 듯이 오직 먹이와 간식에만 몰두하며 전보다 더욱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신기하게도 그때쯤 나와 아내는 코로나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 심신이 거의 회복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때가 10월 첫째 주가 끝나가는 무렵이었으니 걸으면서 마주치는 나무와 공원의 빛깔은 울긋불긋함을 더해가고 있었고 조금씩 익어가는 가을바람은 가끔씩 냉기를 품고도 있었다.
코로나에서 해방되자 나는 무엇인가 해야 될 것 같다는 조바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최대 1년 정도 쓸 여유 자금을 준비해놓긴 했어도 두어 달이 지나면서 줄어든 생활비 통장 잔고를 볼 때면 처음 생각과 다르게 한숨이 나왔다. 주식이 깎아먹고 있는 손실금액(아직은 평가금액이지만;;)이 뇌리에 박혀 생활비 통장 잔고와 플러스를 하면서 줄어드는 자산의 하락이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주식을 그렇게 오랫동안 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수익만 예상했던 자만심 때문에 현금 비중을 거의 남겨놓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감마저 내려 박는 주식처럼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근사하게 계획하고 실행하여 여유로운 백수생활을 즐기다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내 새로운 인생의 2막을 꿈꾸었던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고 모든 게 빠르게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었다.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이것저것을 찾아보았지만 급한 마음에 할 것이라곤 다시 학생들 앞에 서는 것, 또는 마지막으로 했었던 요식업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 일들은 내 인생의 1막 안에 가두어 두고 좋은 추억과 교훈으로만 남기를 바랐는데, 할 수 없이 1막 안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후회만 남을 것 같다는 답답함에 밖으로 나가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머릿속을 비워냈다.
예언자 칼릴 지브란의 명언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를 중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