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가는 길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백수 도전기(5)

by 글짓는 베짱이
93세 노모가 계시는 충북의 고향 가는 길은 언제나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평안하다.


일할 때는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 백수가 되니 차량이 덜 막히는 평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장점이다. 주말에 비해서 한가로운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하행하다 보은-상주 간 고속도로로 빠지는데 이쪽으로 가다 보면 길은 더 한가해져서 주변의 웅장한 자연을 감상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이음새를 뒤쪽으로 사라져 가는 나무들의 빛깔에서 느끼며 이때 즈음 자주 듣던 음악을 꺼내 들었다.


<015B>의 '슬픈 인연'이 흐르고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가 이어지면서 추억은 대학시절 캠퍼스 그 어디쯤에서 서성거린다. 순간 지나치는 이정표를 보고서 추억에 취해 지나온 길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인생의 중후 반대를 가로지르는 내 나이처럼 고향을 향해 달리는 나의 현재 위치도 반쯤을 지났구나라고 인식한다.

어느새 스피커에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흐르고 다시 나는 시간을 거슬러 함박눈이 하늘을 온통 뒤덮은 어떤 날 캠퍼스의 한 벤치에 빨간색 코트가 잘 어울렸던 그녀를 혼자 놓고 뒤돌아 섰던 그곳에 머물렀다.


고향 가는 길은 종종 나를 과거로 이끌어 시간여행을 떠나는 타임머신 같을
때가 있다.

고향으로 간다는 건 유년시절을 보낸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가는 길 곳곳에 베인 추억들이 되살아 나고 그 기억의 끄트머리엔 결국, 그리운 어머님이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반기고 계셨다.

이젠 걷기도, 무엇을 들기도 힘겨워하시는 어머니가 오늘도 변함없이 나의 차를 발견하고는 거실문을 열고 가녀린 발걸음으로 나오셨다.


다음날, 어머니는 내가 온 김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몇 가지 일을 끝내고 싶어 하셨다.

먼저 xx면에 나가 자식들에게 나누어줄 참기름을 짜고, 시간이 되면 5개월 전쯤 서울 누님 댁에서 볶으신 머리가 다 풀렸다고 나에게 보여주시며 뽀글이 파마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차로 10여분 가량 떨어진 면에 가시는 것조차 어머니에겐 큰일이 되어버린 세월이 너무 야속하고 속상한 나는 가는 내내 창밖으로 지나치는 유년시절 동무들이 살았던 마을들을 무심코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20221106_154338.jpg [xx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방앗간]


XX면에 도착하여 방앗간으로 들어서자 이웃마을 어르신 몇몇 분이 고춧가루를 빻고 참기름을 짜고 하시느라 줄을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시며 즐거운 나들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다니던 그때에도 있었던 방앗간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백수로 3개월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참깨를 맡겨놓고 어머니가 다니시는 면에 하나뿐인 미용실을 찾아갔다. 창문으로 어머니를 알아보고 부리나케 나오는 미용실 원장을 보면서 시골분들의 정감 넘치는 풍경에 코끝이 찡해졌다.


참기름도 잘 짜고 뽀글뽀글해진 머리를 매만지시며 속이 시원하다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면에 나온 김에 여기 잘하는 순두부찌개 식당에서 먹고 들어갈까요?"라고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에이~ 집에 먹을 거 많은데 뭐하러 사 먹어.. 난 사 먹는 거 별로 안 좋아.. 아범은 자주 사 먹을 텐데 집에 오면 엄마 밥 먹고 가~"라고 하실 텐데 오늘은 흔쾌히 그러자 하신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끝마쳐서 홀가분해지셨던지 아니면, 모처럼 막내아들과 외식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우셨다.


2박 3일간의 고향집에서 휴식은 짧았지만 마음에 안식을 주는 시간들이었다. 어머니가 더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계셔서 내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평안을 얻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대문 앞까지 배웅 나오신 어머님을 차량 백미러에 담아 가며 골목을 돌아설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제 다시 평택으로 돌아오는 길, 한참 동안 그리운 어머니를 추억하다 점점 현실로 다가서는 내 시간과 거리가 좁혀지면서 어느샌가 나는 주식을 생각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다시 번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11월 셋째 주가 그렇게 지나가고 나의 A주식은 현재 수익률 -15% 내외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단기 스윙 B주식은 다행히도 빠르게 치고 올라와 본전 가까이에서 횡보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가운 제자의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