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대마왕에게 한 수 배우다!

백수 도전기(7)

by 글짓는 베짱이

백수 111일째 되는 화요일.. 날씨가 매섭도록 싸나운 겨울 날씨로 변했다.


이제는 백수가 오히려 편안해지는 영역으로 넘어온 듯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내 옷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양 불편하고 불안했던 시간이었는데 11월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슬슬 백수 생활이 편해지고 내가 언제 일을 했었던가?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돈 많은 백수야 걱정 없이 쉬면서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더불어 마음의 호사도 누릴 수 있겠으나 나는 그런 백수가 아니기에 결코 좋은 현상만은 아니었다.


이쯤 해서 내 주변에 있는 백수의 대마왕을 찾아가 그의 삶과 현재 내면의 상태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백수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백수 도전기(2)'에서 잠깐 등장했었던 학원 운영 시절 실장을 역임했던 5년 후배... 바로 그 친구가 내 주변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백수 대마왕이다. 사실, 2탄에서 이 친구에 대해 자세하게 썰을 풀까 하다가 좀 더 아껴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풀어야지 하며 잠시 숨겨두었는데 오늘 그날이 된 것 같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백수 생활을 한지 자그마치 만 2년을 넘기고 3년 차에 들어서서도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2020년 3월 학원을 퇴직하고 백수가 되었으니 그의 백수 생활은 가히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물론 더 긴 세월을 유유자적하는 자발적 백수님들도 있겠지만, 내 주변에서는 유일하기에 나에겐 적어도 그렇다는 얘기다.


내가 자발적 백수가 된 동기와 용기도 어찌 보면 이 친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13년을 운영해온 학원을 2020년 여름에 정리하고도 나는 2019년 12월에 오픈한 프랜차이즈 가게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학원 강사와 운영에 질려서 단순하게 무언가를 판매하는 자영업을 하고 싶어 시작한 가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의 대가를 바라면서 나와 아내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만끽하며 서성대는 그 친구와의 만남이 더욱 잦아졌다. 옛 친구들을 만나려면 자영업을 하는 내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상반되어 년 중 행사 정도였고, 모두들 그랬겠지만 코로나로 그마저도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백수였던 그 친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에 내가 편한 시간이면 아무 때나 거의 허락 없이 불러내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수 있었다.(단지 시간이 편해서 이 친구를 자주 만났다는 건 아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나랑 죽이 잘 맞는 친구 같은 후배였다.)


"당신(내가 좋아하는 후배들을 부르는 호칭)은 그렇게나 오래 쉬고 지겹지도 않아?"

라고 물으면 그 친구는 항상

"아이고~ 원장님. 너무 좋아요~ 나랑 너무 잘 맞아요~"

하며 숱이 범벅인 갈색 머리를 이마에서 쓸어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백수 이거 아무나 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제가 아는 원장님은 1년은커녕 두 달 넘기기도 힘들걸요~하하"

이렇게 약 아닌 약을 올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친구도 주식으로 2년 6개월 이상을 버티고 있는 중이라 내 백수생활의 표본이기도 하다. 장기투자를 1년 단위 목표로 설정하여 1년 동안 부부가 먹고 살 양만큼 벌면 그 돈으로 다음 해를 버틸 자금으로 빼놓고 나머지를 투자하는 식이다. 하지만 주식투자라는 게 어디 수익만 주던가? 손실 날 확률이 훨씬 더 크기에 자칫 위험한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주식투자 경험으로 신중하게 블루칩을 찾아내고 현금 비율과 잘 섞어서 탁월한 손실 방어를 하는 노하우가 생긴 이상 아직까지는 아니, 적어도 내년까지는 백수 생활을 유지해도 되는 상태였다.


"만약에 주식투자가 수익에서 손실로 전환되면 어떻게 하려고?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라고 물으면,

"만약 그렇게 되면 뭐 그땐 몸이 움직이겠죠~ 뭐든 못하겠어요?.. 하하하.."

대책이 없는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르겠지만 듣고 보면 또 맞는 말 같아서 같이 웃었다.

"백수가 되기로 한 이상 두 달이든 1년이든 몸과 마음이 편하게 릴랙스 하시고 그 여유를 좀 즐겨보세요~"


백수 대마왕적 시점에서 무엇인가 준비된 계획이나 거창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은 산산조각이 나고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을 마음에 새기며 돌아설 때가 많다.

"야~ 백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그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인생의 지향점이 달라 어떤 이에게는 그 친구와 나의 사고방식이 거슬리거나 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을 책임질 가장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 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댓글조차 하나 없으니 그나마 안심이다.(^^)


백수 자체가 직업이 될 수는 없기에 자발적 백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업'이 필요하다. '업'이란 표현보다는 '돈벌이'가 직설적이고 훨씬 낫겠다.

그 친구와 나는 물론 '주식 전업 투자자'라고 불리거나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다녀도 괜찮아 보이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 친구는 몰라도 나는 주식을 전업으로 살아도 될 만큼 실력이 출중하거나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그건 미사여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도 내게 단 한 번도 자신은 '주식 전업 투자자'라고 표현한 적이 없었다.


다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과도기에 '백수'라는 타이틀을 달아놓고 적지 않은 자산을 주식투자에 올인한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주식 전업 투자자'가 되기를 바랐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말 어쩌면 지금처럼 살고 있는 백수의 길이 인생 2막에서 내가 전업으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는 날이다.


그 유명한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명언이 오늘 밤 가슴에 꽂혀 나에게 '백수 도전기'가 결코 나를 위한 변명이 아닌, 실체를 가진 무엇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겠다는 또 하나의 대안을 머릿속에 그리는 중이다.




... 흠 12시가 넘어 오늘로써 백수 112일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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