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다이버, 심연으로 내려가자.
"숨을 뱉어요. 더 나올 게 없다 싶을 때 한 번 더 뱉어야 해요.
살아보려고, 본인도 모르게 자구 숨을 들이마시니까 내려가지를 못해요."
수년 전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배울 때, 사부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주신 얘기다.
깊어서 시커멓게 보이는 바닷물이 가진 묘한 압박감. 물이 무서웠다.
우습기도 하지. 명색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이 물을 무서워한다니. 그런 나를 북돋워주려는 사부님의 배려였는지, 늘 본인도 바다가 무서워 조심조심 몸을 적신다고 하였다.
"이런 자세가 아니고서는 100번 잠수했다가 99번만 나오는 수가 생긴다고..."
너무 옳은 말씀이라, 힘이 용솟음치면서 쏙 들어갔더랬다.
어찌 됐건 심연을 극복해 보려는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 가슴 한켠에 밀도 높은 공기층을 감춰놓았고, 이것이 부력이 되어 몸을 떠받치는 바람에, 물속에 펼쳐져 있다는 신세계를 목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시작은 허둥지둥 쉽지 않았으나, 몇 번의 바다 잠수를 경험하고 나니 이내 몸이 뱉어냄의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잠수라는 것은 내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결정적 새로움 두 가지를 선사해 주었다.
첫 번째는 3차원의 경험이다.
3차원의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란 것은 대체로 중력에 의해 발이 바닥에 딱 붙은 채로 평면에 살아간다. 심지어 높이 올라가 비행기를 타더라도 발은 바닥에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은 좀처럼 3차원의 공간을 자유롭게 운신할 수 없다. 기껏해야 평면 위에서 허우적거리거나, 폴짝 뛰어 찰나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스쿠버장비를 들쳐매고서 사부님의 조언에 따라 숨을 뱉어내고 뱉어내다 보면 드디어 보골보골 거리는 기포보다 몸이 더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간다.
줄어드는 가시광선만큼에 비례하여 수심도 깊어진다. 십 수 미터를 내려가면서 재킷에 공기를 조금 주입하면, 중력과 부력의 평형이 딱 맞으며 둥실하고 몸이 뜨는 구간이 발생하는데, 하늘에 뜬 풍선이 아마도 이런 기분일 것이다.
그때부터는 들숨과 날숨으로 내 몸의 고도를 조절하고, 핀을 살랑살랑 저어 방향을 조절한다. 물속의 풍선이요, 물고기가 되어 3차원을 거닐다 보면 극한의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렇게 비현실적인 감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절대적인 고요함이다.
외이도에 물이 가득 차오르며 세상과 나 사이에 먹먹한 차단층을 형성한다. 분명히 나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공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다만 두개골 안에서 울리는 나의 쌕쌕거리는 호흡소리만이 사방에 가득할 뿐이다. 들숨과 날숨이 이렇게 명료할 수가 없다.
바퀴가 구르며 아스팔트의 돌을 퉁겨내고, 누군가의 신경질적인 경적이 불시에 찾아오며, 때때로 고성이 오가며, 책상과 의자가 바닥을 긁어대고...
익숙해서 소음으로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자, 비로소 귓전에 가득한 숨소리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사랑스럽다. 내가 자랑스럽다. 내가 자유롭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것은, 나 자신에게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물에 들지 못하고 뭍에서 헤맨지가.
생계를 핑계 삼아, 정작 나를 찾는 시간을 찾지 못한다는 것. 묘한 모순이 아니던가.
살다 보니, 이래저래 짐도 참 잘 는다. 이건 이래서 필요하고, 저건 저래서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진급도 해야겠고, 돈도 모아야겠다. 사랑도 챙취하여 가슴에 넣어야겠고, 명예도 갖고 싶다.
아차, 너무 들숨 천지가 아닌가?
일에 손이 붙고, 손에 책임이 붙더니, 책임에 허영이 붙었다. 불어난 덩치만큼이나 무거워진 바람에, 나는 고도를 갖지 못하고 늘 평면에서 지지고 볶는다. 이젠 살랑살랑 방향전환하기에도 너무 묵직하구나.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멀리 가기 위해 쌓은 것들 덕분에 내 주변에는 재잘재잘 언쟁이 끊일 날이 없는 것만 같다.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배울 때도 내 상태는 그랬던 것 같다.
살이에 치여, 내가 나 자신을 도통 모르게 되었을 무렵, 무엇이라도 배워보면 속이라도 후련할까 싶어서 사부님의 손을 잡았더랬다.
진짜 내 삶의 심연을 찾아서,
다시, 허영의 숨을 뱉어내어 보자. 더 나올 것이 없겠다 싶을 때,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