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안녕 [김동수 그림책]
어둑한 저녁, 할머니가 길가에 멈춰 선다.
숨이 꺼진 강아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할머니 집에는 종류가 다양한 동물들이 있다. 모두 길 위에서 죽은 동물들이다. 짧게 조각난 뱀의 몸을 하나로 다시 이어준다. 깃털이 뭉텅뭉텅 빠지고 날개가 부러진 부엉이도 가지런히 매만져준다. 할머니의 손을 거쳐간 동물들은 마침내 눈을 감고 편안해진다. 한숨 푹 잘 수 있도록 솜이불을 곱게 덮어준다.
새벽녘 어스름에 일어난 할머니는 옛 모습을 어렴풋이 회복한 동물들을 수레에 태운다.
작은 통통배에 동물들을 어디론가 띄워 보내며 작별인사를 한다.
"잘가, 안녕! "
도서관에 타관 도서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내 차 바로 앞에 멈춰 선 버스는 승객을 내려주고도 아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버스 옆으로 조심스레 비켜나갔다. 시선이 버스 앞을 향했던 그 순간 나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췄다. 겨우 두 주먹만 한 크기의 새끼 고양이가 고개를 좌우로 끄덕이며 도로 한가운데 주저앉아있다.
“차에 치인 건가? 괜찮을까? 어떡하지?”
도로의 차들과 경적 소리, 복잡한 내 마음이 한데 뒤엉킨다. 도서관 입구에 주차를 하며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데려가지?” “어디로 데려가지?” “고양이도 강아지도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는데...”
“누군가도 분명 봤겠지?”
길 위의 고양이, 더군다나 이미 숨이 멈췄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위해 겁 많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어느새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살리는 거야, 어쩌면 그저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일이라도, 혼자 길 위에서 외롭지 않도록 그림책 속 할머니처럼 용기를 내보자. 딱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큼만,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더라도.”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 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차들이 다시 지나가고 있다. 아기 고양이의 흔적도, 아무런 자국도 없이 도로는 아주 깨끗하다. 혹시 몰라 근처 수풀이나 보도블록 위를 한참을 둘러봤다. 이번에도 평소와 다름없다. 도로를 건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고양이였을까? 아니면 조금 더 용기 있는 누군가가 있었을까? 그림책 속의 할머니가 다녀갔을까? 다음에는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달려올 수 있을까?
다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길 위에서 삶과 죽음 그 사이로 곡예사처럼 줄을 타는 고양이들을 생각해보았다. 부디 그 줄 위에서 떨어지질 말기를, 만약 떨어지더라도 사뿐하게 착지하는 그 날렵함을 유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