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벽시계

by 나우


아파트라는게 다 같이 편하자고 사는 곳인데, 정해진 날까지 쓰레기를 안고 살아야 한다니.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정책이 바뀌면서, 쓰레기 분리수거는 지정된 날에만 가능해졌다. 기다리던 바로 그날 월요일이었다. 구시렁거리며 며칠간 쌓아둔 쓰레기를 들고 출근길에 나섰다. 사나흘 동안 엄마와 나, 두 사람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한 짐이었다. 불만 가득한 손길이지만 아주 착실하게 모두 분리해 버리고 마지막으로 비닐봉지를 내던지려던 순간이었다. 시야의 한구석에서 낯익은 무엇인가 탁 걸린다. 분리수거장 한쪽 벽에 전에 없던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어라, 저게 왜?

스마트폰 시계와 시간을 대조해본다.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잘 맞는다. 약을 몇 번을 갈아줘도 도통 시간을 맞출 줄 모르길래 오냐 너도 주인 따라가고 싶은 게지? 하고 그 녀석이 운명을 달리 했음을 받아들였다. 그까짓 고장난 벽시계를 내다 버리는데도 이다지 비장했던 까닭은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유품같은 시계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한자리에서 꼬박 30년을 일했다. 그곳에서 반짝거리는 형형색색의 보석도 팔았고 영롱한 진주 목걸이도 팔았고 손가락 마디만 한 누런 돼지도 팔았다. 어린 나는 그걸 다 가진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주 종목은 따로 있었다. 바로 고장난 시계 고치기. 시장에서 5천 원 주고 산 값싼 시계부터 스위스 장인이 만들었다는 명품시계까지, 아버지의 손에 오면 흉 하나 안 남고 제 기능을 찾았다. 이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돌았고 단골손님들은 이사로 동네를 떠난 후에도 꾸준히 아버지를 찾아왔다. 김사장님처럼 시계 잘 고치는 사람이 없어. 그럼 아버지는 눈이 휘어지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시계 뚜껑을 ‘똑’ 소리 나게 딴다. 원래부터 그랬다. 아버지는 뭐든 잘 고쳤고 뭐든 뚝딱 잘 만들었다. ‘아버지, 여기 책상 옆에 요만한 보조 테이블이 있었으면 좋겠어. 작업할 때 필요해.’ 하고 학교를 갔다 오면 어느새 고만한 보조 테이블이 내 책상 옆에 있었다. 그 모양새가 제법 위풍당당했다. 반면 능글맞게 생색낼 줄 모르던 아버지는 조용히 소주 한 잔을 기울이기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칭찬 스티커를 기다리는 어린 소년 같은 마음이 숨긴다고 숨겨질까. 나는 일부러 더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 슈퍼맨이네 슈퍼맨! 맥가이버야! 그럼 아버지는 헤헤,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소주를 들이킨다.

크, 맛있다.

뭐든 잘 고치고 잘 만드는 아버지가 항상 좋았던건 아니다. 그 재능이 미울 때도 있었다. 친구들처럼 신형 핸드폰이 갖고 싶던 어느 날, 학교 화장실 변기에 핸드폰을 빠뜨린 사건이 있었는데, 걱정 어린 다른 친구들의 시선과 다르게 나는 신이 났다. ‘아싸, 핸드폰 바꿔야지.’ 신나게 집까지 내달렸다. ‘아버지! 나 핸드폰 변기에 빠뜨렸어! 새로 사줘!’ 아버지는 말없이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그의 손에 새로운 핸드폰 박스가 들려있길 바라며 그날 밤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건 새것처럼 멀쩡해진, 내 낡고 지친 핸드폰이었다. ‘자, 봐라! 아버지가 고쳤다!’ 흐뭇한 아버지의 미소가 그날만큼 얄미웠던 적이 없다. (그리고도 1년을 더, 그 핸드폰은 아주 잘 돌아갔다.) 그 사건만 제외하면 맥가이버같은 아버지의 재능은 우리 가족의 삶을 소소하게 상승시켰다고 할 수 있었다. 소주 한 병이면 맞춤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때론 수명이 다해 버리려고 내놓을 것들까지 퇴근길에 들고 들어와 1-2시간을 붙잡고 씨름을 할 때도 있었다. 안 고쳐진다, 그냥 버려라. 하는 나와 동생의 타박에도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이긴다. 쓰레기장으로 향했을 무용해진 물건들은 아버지의 손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어 몇 년을 더 유용하게 우리와 살아갔다. 무탈하게 잘 돌아가는 물건들을 보며 아버지는 보란 듯이 한마디를 한다.

‘자, 봐라.’.

그렇게 뭐든 잘 고치고 잘 만들던 시계방 사장님이 고장이 났다. 지독한 암덩어리들이 아버지의 온몸 여기저기 번져있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모를 만큼. 고장난 물건은 악착같이 고쳐 설 자리를 다시 찾아주던 아버지는 정작 자신의 몸을 고치는 일에는 강 건너 불구경마냥 고요했다. 그저 그를 통과해 가는 시간을 고요히 기다리는 것처럼. 아버지는 절대로, 절대로 가족들에게 짐이 되진 않을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 약속을 꼭 지키려는 사람처럼 딱 한 달하고도 보름,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게, 아버지는 우리가 지치지 않을 만큼만 이별의 시간을 주었다.

아버지의 30년 자리를 정리하며 이제는 찾는 사람도 사라져가는 낡은 시계들도 정리했다. 그 중 쓸만한 것들 몇 개는 가져와 동생의 신혼집에도 하나, 내 화실에도 하나, 집에도 하나, 그렇게 버리지 못한 아버지의 케케묵은 흔적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물건들도 주인을 알아보는 걸까. 관리가 못마땅했던 탓인지 그저 세월이 흘러 시원찮아진 것인지, 시간이 맞지 않던 벽시계를 내도록 약만 갈아주다가 포기하고 쓰레기장 내다 버린 것이 바로 지난주였다. 이제 버린다고 잔소리를 할 사람도, 도로 주워올 사람도 없지만 영 마음 한쪽이 뻐근했다면 조금 변명이 되려나. 그렇게 내 손에 버려진 그 녀석이 제 역할을 찾은 벽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자, 봐라.’

마치 오래전 아버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물건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하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지금껏 무던히 도려내던 그리움이 엉뚱한 곳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셈이다. 고쳐진 시계 하나가 고칠 수 없는 먹먹한 기억을 쓰다듬는다. 웃음이 눈물을 앞서 나온다. 한동안은 그리움이 곧장 괴로움으로 이어져 외면해보려 했는데 이제는 마주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던 아버지가 이제야 내 마음을 고친 듯하다.


덤덤해졌다지만 여전히 그립다.

쿵쾅거리던 망치 소리, 거친 톱질 소리, 힘차게 돌아가던 드릴 소리, 지긋지긋한 소음의 하모니. 그 끝에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던 작은 탁자 하나, 그리고 눈이 휘어지던 그 웃음. 칭찬 스티커는 냉동실에 살짝 얼려둔 소주 한 병.

이 그리움이 희미해질 때쯤 만나길. 그때까지 우리, 늘 그랬듯 행복함으로.

KakaoTalk_20250927_121724816.jpg 요즘처럼 날이 좋으면 자전거와 따뜻한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가지고 발이 닿는 곳 어디든 가던. 아마 지금도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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