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 美, 도달 me

by 나우



얼마 전, 진지하게 다시 프랑스에 가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스몄다. 고작 3년 살았던 프랑스가 그렇게 좋은 나라냐 하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그 어떤 뜨거운 계시가 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 감정이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기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 빠져버리는. 마치 그게 진짜 사랑인 양,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내 삶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게되는 감정 말이다. 아마도 내 두 발아래 펼쳐진 한 국가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품었던 이상을 실현시키며 벅차오르던 ‘내’가 그리웠던 것 같다.

나의 첫 프랑스 로망은 놀랍게도 일곱 살에 시작되었다. 30여 년을 거슬러 1993년, KBS에서 방영된 그 전설의 만화. 주제가는 이렇게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어도, 향기로운 꽃~”

브라운관 속에서 금발을 휘날리며 말 타고 등장하는 그녀, 군복 입은 그대 이름은 오스칼.

여자지만 남자로 자라,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으로 일하고, 백작의 칭호를 받았으나 혁명에 눈을 떠 민중의 피, 땀, 눈물 위에 세워진 낡은 멍에와 신분 따위 버리고 진정한 사랑과 함께 왕실과 귀족을 향해 총을 든, 그야말로 우아한 비극의 아이콘.

일곱 살의 나는 한 떨기의 고고한 흰 장미 같은 오스칼의 자태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더랬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니!!”

그날 이후 나는 '오스칼 앓이'에 빠져, 스케치북에 그녀를 백 장이고 천 장이고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방영한 회차에선 군복만 입던 오스칼이 그리스 여신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와 페르젠 백작과 왈츠를 추는 장면이 나왔는데 자라나는 성장기 어린이 김정은은 3박 4일 밤잠을 설쳤다. 예쁜 그 모습에 두근거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빨리 아침이 와서 그 예쁜 공주님을 내 손으로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작자가 군복의 결계를 풀었으니 다음 날부터 나는 마음껏 여왕의 자태에 오스칼을 끼워 맞췄다. 그 순간만큼 나는 로코코 시대 왕실 디자이너였다. 오스칼이 지겨워지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밤하늘의 별 백 개도 부럽지 않은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따라 그리기도 했다. 나는 스케치북 속 나의 이상형들과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피어난 내 꿈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했다.

"나는 프랑스 가서 화가가 될 거야!”

그 시절의 내게 프랑스는 곧 ‘이상향’이었고, 오스칼의 그림체는 내가 꿈꾸는 모든 미(美)의 정수였다. 갸름한 턱선, 길고 유려한 팔다리, 촉촉하게 반짝이는 눈, 거의 산맥 수준의 콧대. 당시 그 ‘순정만화 그림체’를 완전히 내 걸로 만들기 위해 쓴 스케치북을 쌓으면 거의 일곱 살 어린이의 키는 쉽게 뛰어넘을 정도였다,

나는 자신했다. 내가 그린 공주님은 세상 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만큼 가녀린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라고. 모두가 나의 공주님과 사랑에 빠지리라는 생각에 언제나 행복했다.

30년이 흘렀다.

나는 공주를 그리고 있다. 여전히,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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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팔다리는 짧아져 총칼을 들고 혁명을 이끄는 건 무리겠지만, 큰 대가리 덕에 박치기 한 방은 자신 있는 공주님이다. 잘록한 허리는 온데간데없어 드레스핏이 다소 아쉬우나 조악한 악세사리로 가리면 그만이다.

우아함보다는 우스움에, 절제된 미보다는 해맑은 망가짐에 가까워졌고, 순정만화 주인공이 아닌 잔망스러운 캐릭터로 살아 숨 쉬게 되었다. 머리가 커져 날쌘 움직임은 어렵겠지만 그 대신 커다란 얼굴 위로 지어진 표정이 풍부해졌고, 빵빵한 배와 짧은 다리 때문에 도도한 걸음은 힘들지라도 걸음마다 보송보송 따뜻한 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나의 오스칼은 어디로 갔을까?

계절을 서른 번쯤 돌면서 그녀를 다시 불러오려고 나름 애를 써봤다. 오스칼 같은 그림체,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리디북스 표지’ 스타일을 내 손으로 구현해보겠다고 말이다. 그 노력의 8할은 일곱 살 무렵에 이미 써버렸고, 남은 2할은 어른이 되며 틈틈이 분할 납부하듯이 써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노력은 힘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그 추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의 오스칼이 점점 죽어간다.

사력을 다해 그녀의 눈동자에 수입산 스팽글처럼 반짝거림을 뿌려도 그녀는 살아나지 않았다. 차라리 냉동실에 잠들어 있는 동태가 더 생동감 넘쳤다. 분명히 내 스케치북 속 오스칼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금방이라도 왈츠를 출 것만 같았는데, 어쩌면 그것도 나의 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텄다. 밤새도록 작업을 해도 더이상 즐겁지 않았고, 마치 스스로에게 단단히 속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긴 했던걸까? 그래서였을까. 흥미도 사라지고 말았다. 점점 그림 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스케치용 노트는 창고 속에 처박힌 채로 먼지다듬이의 풍부한 먹이가 되었다.

설상가상 AI라는 대항마가 등장하며 웹소설 표지를 그리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인간의 손으로는 며칠이 걸릴 작업을 단 몇 분 만에, 그것도 실사 뺨치는 퀄리티로 뚝딱 해치우는 AI 앞에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으리란 신념은 결국 붕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동안 애타게 손에 쥐어보려고 열정과 애정을 가득 쏟았던 그것이 이토록 알량한 것이었다니.

수백 권으로 나열할 수 있었던 나의 노력, 그로 인해 탄생했으면 했던 나의 완벽한 이상형은, 완전한 기계의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수 분 만에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옛날 《베르사유의 장미》를 그린 전설의 작가를 향해 느꼈던 것 ‘질투’ 비슷한 것은 사치였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과연 내가 순정만화 그림체를 정말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의문. 그토록 사모해 마지않는다면 그걸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이토록 뜨뜻미지근할 수 있을까? 열 번 찍지도 않았는데 도끼질을 멈추겠다니, 나는 애초에 그 나무를 벨 의지가 없던 것이었다.

그걸 인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같잖은 핑계를 대자면 무얼 그려야 할지, 정말로 그리고 싶은 게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금씩 끄적이기 시작했다. 화실을 운영하며 회원님들과 공유하게 된 일상 이야기, 길에서 데려와 애지중지 키우는 나의 고양이들의 모습. 대충 동그랗고 납작하게 낙서하듯 그리던 나의 캐릭터들이 점점 반짝이기 시작했고 쉴 새 없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떠들어댔다.

한 녀석은 츄르가 모자라다며 투덜댔고, 다른 녀석은 필라테스하다가 사지가 분리될 뻔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뿐인가, 물 공포증이 심한 내가 고양이들과 배를 타고 나가 쭈꾸미를 낚았다. 엄마가 입에 대지도 못 하게 했던 불량식품을 기어코 손에 쥐고는 눈치를 살살 보는 공주는 내 모습 그 자체였다.

대충 낙서처럼 그렸을 뿐인데, 그들은 금세 나보다 더 생기 있게 움직이고, 나보다 더 유쾌하게 살았다.

작업을 하다 보니 잠잘 시간이 오는게 아까워질 지경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 스케치북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 자체가 신날 만큼 그림 그리는 시간이 즐겁던 내가 겹쳐 보이며 깨달았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었다는 것을.

내가 추구하던 ‘미(美’)는 늘 저 먼 곳에서 손에 잡힐 듯 반짝거렸다. 그 빛을 쫓아 비로소 내가 도달한 곳에 ‘미(me)’는 손바닥 안에 들어차는 깜찍함이었다.

나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물자국 하나 없이 광이 나는 유리잔 같았다. 조심스럽게 쥐어야 했고, 놓치면 깨질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질까 항상 조심했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둔 아름다움은 두 손에 착 감기는 머그컵 같았다. 때론 따뜻하고, 때론 입술을 데일 만큼 뜨겁고, 무엇보다 나랑 제법 잘 어울린다.

나는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눈썹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은 엉뚱하게, 종종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아주 자주 사랑스럽게 굴면서 동글동글한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나한테는 제법 잘 어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내 캐릭터들은 웃긴 표정으로 내 하루를 대신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내가 도달하며 기어코 사랑하게 된 진짜 나의 ‘미’(me)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꿈꿨던 프랑스 파리는 무언가에 푹 빠져 들떠 있던 짙은 감정의 풍경이었고 내가 그리던 오스칼, 그러니까 순정만화 그림체는 멋져 보이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나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지금 내가 그리는, 머리 크고 팔다리 짧고 배 나온 공주님도 참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내년엔 파리에서 세 번 째 전시를 해보려고 계획을 잡았다. 다시 찾게 될 나의 낭만, 프랑스 파리, 그땐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멋진 군복의 오스칼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작고 동글동글한 나의 공주님들을 내 품에 안고 가서 더 넓은 세상에 나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보려고 한다.

흑석동의 작은 작업실, 고양이가 창틀에 누워있는 나의 작은 방, 소담한 그 공간에서 오늘도 나는 장난 가득한 그림을 그린다.

나다운 아름다움을 담아 마치 한 편의 순정만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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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해마지 않는 나의 왕자님들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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