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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Nov 30. 2021

잘 쓰면 독도 약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독약

원래는 생화학 무기였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전쟁 승리를 위해서 생화학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사람의 근육을 마비시켜서, 결국엔 호흡 곤란으로 죽음에 이르는 독, 보톡스의 원료인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는 전쟁 무기로 연구되었습니다. 단 130g으로 70억 명 전 세계 인구를 전멸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독약입니다.


하지만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보톡스의 생화학 무기 연구도 끝났습니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독약 연구는 대학교로 이관됩니다. 사람에게 유용한 물질로의 학술 연구가 시작되었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에드워드 샨츠(1908~2005, Edward J. Schantz)는 보톡스 세균의 근육 마비 원리를 증명했습니다. 세균의 독성 물질만 추출하여, 동물의 근육 신경 반응을 차단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른 건 멀쩡하고, 오직 근육만 마비시키는 화학 물질. 이 특이한 독소는, 의약품으로의 잠재력을 증명했습니다.



새로운 의약품 탄생



새로운 의약품은 의사로부터 개발되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안과의사 알렌 스콧(1932~, Alan B. Scott)은 보톡스 독소로 원숭이의 눈 근육을 마비시켜서 사시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고,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서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오클리눔(Oculinum)이란 의약품으로 특허를 내고 회사까지 설립합니다. 1989년, 새로운 안과 주사제  보톡스(당시 Oculinum)의 탄생입니다.



돈 되는 사업은 따로 있다



보톡스는 원래 사시와 눈꺼풀 떨림증(안검경련)을 치료하기 위한 안과 주사제로 처방됐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안검경련 환자에게 보톡스를 주사하던 진 카루더스(Jean Carruthers, 캐나다 안과의사)는 이상한 부작용을 발견합니다. 보톡스 주사를 맞은 환자의 미간주름이 말끔히 사라졌거든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한 진 카루더스는 남편이자 피부과 의사인 알라스테어 카루더스(Alastair Carruthers, 캐나다 피부과 의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다음 날, 카루더스 부부는 병원 직원에게 순수한 미간주름 치료 목적으로 보톡스를 주사했습니다. 며칠 뒤, 그리고 몇 달 뒤에까지 직원의 미간주름이 팽팽한 것으로 확인한 후, 카루더스 부부는 본격 임상시험을 신청합니다. 1992년, 미국 피부과 학회에 새로운 논문이 발표됩니다. Treatment of Glabellar Frown Lines with C. Botulinum-A Exotoxin, 보툴리눔 독소를 이용한 미간주름 치료 효과.

 

세계에서 가장 돈이 되는 약, 주름 치료제 보톡스의 발견입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앨러간이 챙겼다



과연 돈은 누가 벌었을까요? 보톡스(Oculinum)의 특허권자, 알렌 스콧이 벌었을까요? 알렌 스콧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보톡스 특허로 겨우 9백만 달러(한화 약 100억 원)밖에 벌지 못했습니다. 안과의사였던 그는, 보톡스를 그냥 안과 주사제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미국 회사 앨러간(Allergan Inc.)에 오쿨리눔의 특허권을 9백만 달러에 팔아버립니다.


2002년, 앨러간은 미국 FDA로부터 보톡스의 미간주름 치료제 허가를 따냅니다. 제약회사답게, 보톡스를 어떻게 굴려야 돈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았던 거죠. 그리고 새로운 주름 치료제의 이름을 보톡스(Botox)라고 짓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용 주사 보톡스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앨러간은 보톡스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미용성형 회사입니다. 2019년 한 해에만, 보톡스는 10억 달러(한화 약 1조 1,900억 원)의 순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독약



주름진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젊음을 향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미(美)를 향한 사람의 본능은 보톡스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독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규모, 2021 Statista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신음하는 2021년에도 보톡스 시장은 성장했습니다. 2021년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의 시장 규모는 약 54억 달러(한화 약 6조 4,400억 원)로, 작년보다 오히려 3.8% 증가했습니다. 재택근무 화상회의를 하면서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오히려 미용 시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고 하네요.


수명이 늘어날수록,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향한 사람의 마음은 더 커질 겁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독약 보톡스 시장 역시 무한히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1년 현재, 한국에도 4개의 토종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회사가 있습니다. K-beauty와 함께 한국의 보톡스 시장 역시 끝없이 성장 중입니다. 경제 위기에도, 전염병에도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비즈니스. 보톡스 말고 또 있을까요? 제가 보톡스 마케터라서, 앞으로도 굶진 않을 거 같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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