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7년 차인 우리 부부.
돌이켜보면 그 긴 시간 가운데 무려 16년을, 거의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다투며 보냈다.
그런 우리가 25년, 올 한 해는 손에 꼽을 정도의 사소한 말다툼을 빼고는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 부부 관계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이혼을 꽤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우리 부부의 관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다툴 때마다 남편에게만 향해 있던 단순한 미움의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 다른 감정들이 함께 떠오르면서, 그 미움은 점점 남편에 대한 고마움으로 바뀌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의외로 “나 자신의 행복만을 먼저 생각해 보기”였다.
예전의 나는 늘 다짐했다.
‘남편을 이해하고, 아이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다짐만으로는 마음을 오래 다스리지 못했다.
잠시 괜찮아지는 듯하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고, 같은 이유로 같은 싸움을 반복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오로지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남편과 싸우고 나면, 누구보다 가장 불행해지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서로 소리치며 부정적인 말을 주고받는 그 순간의 공기, 며칠씩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없는 사람처럼 지내야 하는 그 시간들이 나를 지치게 했다.
아이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나 자신이 너무나 꼴보기 싫어서,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마음 건강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싸우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난, 남편과 이혼하는 대신, 남편과 “잘 지내보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 이후로 마법처럼 남편을 향한 고마움이 점점 더 커져갔다.
예전엔 못마땅해서 미워 보이기만 했던 행동들이, 이제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해와 받아들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의 17년 차는 조금 늦게 찾아온 평화의 해로 기억되게 되었다.
1.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평온한 일상은 남편 덕분임을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기
2. 예쁘고 친절하게 말하기 (비난 금지!)
3. 저녁은 무조건 차려두기 (남편이 밖에서 이미 먹고 왔다면, 그대로 뒀다가 다음 날 다시 내면 그만!)
이 세 가지를 매일 떠올리며 실천하려고 노력하니, 남편도 서서히 달라졌다.
아니, 사실은 남편이 달라졌다기보다, 원래의 남편으로 돌아온 것에 더 가깝다.
원래 남편은 말도 많고, 사랑 표현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잊고 살았다.
날 서고 무뚝뚝한 내 말투에 남편은 여러 번 나에게 상처받았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의 말수는 점점 줄었고, 우리 대화도 함께 사라져 갔다.
25년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남편과 관계 회복하기”라는 올해 목표는 거의 달성된 것 같다.
요즘 남편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래의 남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가끔 남편에게 불만이 생기면, 예전처럼 쏘아붙이지 않고 최대한 부탁하는 어조로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라고 말해본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 남편도 나의 부탁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정말 고치려고 노력해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말투나 습관이 당연히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결혼 전부터 그랬던, 내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원래 남편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그 부분까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편 역시 내 단점을 잘 알지만, 그걸 바꾸라고 강요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나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더 커졌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 가운데 또 하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남편 저녁식사를 매일 차려준 것이다.
힘든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감사와 사랑의 표현, 그건 바로
“대접하는 마음으로 차려낸 저녁 밥상”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 늘 늦은 남편은 예전엔 대부분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왔고, 가끔 못 먹고 퇴근하는 날엔 나에게 “밥 남은 거 있어?” 하고 물어보거나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라면을 사와 끓여 먹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늦은 시간에 남편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도 싫었고, 이미 설거지와 주방 정리를 다 끝냈는데, 뒤늦게 또다시 설거지거리가 쌓이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오든, 안 먹고 오든 저녁식사는 무조건 차려두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자, 오히려 “힘들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대신 요리 실력이 점점 늘어서 이제는 웬만한 저녁상은 뚝딱 차려낼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아이들 저녁만 챙기다가 남편 몫까지 더해지니 정말 정신없고 힘들었다. 게다가 식비도 훨씬 많이 들어가 부담은 더 커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쳤다.
“남편이 벌어오는 소중한 월급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보답은 푸짐한 저녁밥을 정성껏 차려주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마음으로 친절한 말투까지 더해 실천하다 보니 우리 가족 전체가 더 행복해졌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혜자는 나 자신이었다.
불평과 다툼 대신, 감사와 대접하는 마음을 선택하니, 부정적인 상황이 줄어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이 훨씬 더 평온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누군가의 이 말에 나는 200% 공감한다.
특히 첫째가 요즘 들어 마음의 안정감을 많이 되찾은 것 같다. 어린 시절 내내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며 자란 우리 첫째.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앞으로도 평생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며 살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