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만만해?

by 우아

살다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을 겪는 경우가 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테고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되는 뉴스만 봐도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니 내게 그런 일 한 번쯤 일어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40대에 들어서서 참으로 험난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세상 말로 삼재라고 하던가. 그것이 두 번도 더 지나갔을 세월 동안 거침없이 나를 할퀴고 간 일들에 모두 사람이 껴 있으니 나는 진정한 사회적 동물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첫인상은 주로 ‘차갑다, 새침데기 같다, 한 성격 할 것 같다, 집에서 손가락 까닥 한번 안 할 것 같다’ 등과 같이 실제 나와는 전혀 다른 제3의 인물이다. 낯을 가릴 뿐 차갑지 않고, 한 성격은커녕 반 성격도 못 해본 인생이고, 집에서 손가락 열 개가 모자랄 만큼 열심히 노동력을 발휘하여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쓰러진 후에야 끝이 나는 그런 인생이다. 그런 나의 외관만 보고 사람들은 참 신세 편한 여인으로 오해를 하는지 가끔 질투한다. 질투라니. 이 나이에 받기에는 참으로 참신한 감정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를 진심으로 질투해 주니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는 나의 전문성에 질투를 느낀 이였다. 나는 책을 참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 그림책부터 자기계발서, 소설책, 청소년 문학, 수필, 요즘엔 여행서에 빠져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내용이면 그냥 좋다. 그래서 내 아이들도 책으로 키웠고 내가 만난 아이들도 ‘책을 평생 친구로 여길 수 있으면 최고의 교육을 한 것이다’라는 목표로 한 해 한 해를 엮어간다. 3월이 되면 학부모님께 나의 교육관을 편지로 보내고 협조를 구하는데 그 내용 중 일부가 학부모이면서 동료 교사이던 그의 뭔가를 건드린 듯했다. 그도 책하면 일가견과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묘한 기류가 흐르고, 뭔가 묘한 견책이 들어 왔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대책 없이 당했고, 형태가 흐렸으니 더 찝찝했다. 후에는 대 놓고 인신공격까지 했다. 좁은 사회에서 무슨 깡인지, 아마도 그마저도 나의 좁은 인간관계를 얕잡아 본 그의 수라 생각하면 참으로 침통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겠지만, 나는 할 말이 없다. 내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상처만 엄청 크게 받고 녹다운 되어 내쳐진 경우가 되었으니 말이다. 많이 아팠다. 인간관계에서 술수를 쓰지 못하는 자의 최후는 비참했다.

또 다른 이는 내 가진 것에 대한 질투를 느낀 이가 있었다. ‘참는 자에겐 복이 없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한 경우이다. 나는 나름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품위유지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내 자식을 어르고 달래 가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의 자격지심에 근거한 우격다짐 식 공격에도 이성적 대응을 위해 무한한 인내와 눈물을 삼켜내며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생각하기에 본인에게는 없으나 나에겐 있는 전문성과 인간관계의 힘과 권력의 힘을 너무도 질투한 나머지 본인 자식의 미래를 갈아 넣는 대결단을 내려! 나에게 조금 큰 상처와 두통과 마음 앓이를 폭탄같이 던져 주고 장렬하게 전사하기 직전까지 갔다. 세상에는 점점 상식이라는 게 없어지고 그 상식이 사람마다 달라지고 그 상식이 제 기준 한정이라는 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나에게 연달아 일어났다.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참을 일이 있고, 참지 말아야 할 일이 있었다. 참지 말아야 할 때는 과감히 법의 힘을 빌려야 함을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나의 것을 질투한 그에게서 배웠다.

최근에는 내 경험을 질투한 이가 있다. 내 살아온 삶을 질투했다고나 할까. 그가 보기엔 내가 다 이룬 것 같을 것이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걸 내가 이룬 것 같을 것이다. 자기가 실패한 것을 나는 보란 듯이 이뤄내어 영광의 상징처럼 끼고 다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이유 없이 내가 미워졌는지 나를 향해 폭주했다. 나도 아직 진행형으로 인고와 눈물의 시간을 겪고 있는 그 과정을 그는 질투한 듯하다. “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냐고.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왜 그렇게 잘 이뤄내어 나보다 먼저 선점해 버렸느냐”라고 나에게 떼쓰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한심스럽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인데 섣불리 판단하고 섣불리 자기 연민에 빠져 섣불리 원망하고 비난하는 그를 보며 나는 그를 위해 한 줌의 마음도 쏟지 않는다. 혼자 한 경주에서 진 것 같은 기분에 아무 연유도 없는 나에게 그 분노의 화살을 쏟고 또 쏟는 그가 참으로 한심스러울 뿐이며 그로 인한 나의 에너지 강탈에 화가 날 뿐이다.

문제는 ‘나’다. 회오리가 지나면 더 강한 회오리가 온다. 온통 뒤흔들고 가 버린다. 나는 뿌리만 땅에 박힌 채 회오리바람에 사정없이 휘말리는 나무처럼 어지럽고 어지럽고 또 어지럽다. 뿌리째 뽑혀 휘날리면 차라리 나으려나. 부러질 듯 나부끼는 나뭇가지들이 힘겹다. 너무 힘겹다. 세상의 무자비한 할큄에 내가 너무 처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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