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by 우아

기억이 잘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엔 깡시골에 살았었다. 그땐 마당도 있었고 밭도 있었다. 참 푸근하고 좋았던 추억이 몇 가지가 있어 마당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면서 아들 셋을 내리 출산해 양육했다. 진심으로 아파트가 무너질까 봐 걱정될 때쯤, 지금 우리집이 딱 나타났다. ‘전원주택 매매, 구경하세요~’ 과감히 마당과 작은 터가 딸린 이 집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너무 행복했다. 아이들이 뛰든 말든, 밤중에 피아노 연습을 하든 말든, 소리를 지르든 말든. 우리집인데 뭐. 살짝 심할 땐 이웃집 창문이 얼마나 열려 있나 확인하고 데시벨을 조율하면 되니 이 얼마나 평온한 삶이란 말인가. 온갖 날고 기어다니는 벌레들쯤은 그냥 살포시 눌러 제거하면 될 일이고, 시즌에 맞춰 존재감 확실히 알리는 날파리는 청소기 한 번 더 돌려주면 될 일이고, 귀에 거슬리게 요란한 개구리 우는 소리마저 청량한 자연의 소리다 마음 먹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해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미숙함으로 인해 아직까지 미해결 과제로 남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주택 외 토지 관리이다. 그나마 남편 담당인 잔디밭은 제외하더라도 그 옆으로 조성된 화단과 자투리땅. 그것이 문제였다.

아파트에 살 때 아이들의 정서와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초록 식물을 제법 키웠었다. 베란다 너머 시야가 사계절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먼 산 풍경이었음에도 살아있는 식물이 가까이에 숨 쉬고 살아있어야 내 숨구멍을 뚫어주는 것 같아 그 애들에게 수다도 떨어가며 살뜰하게 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사랑 나의 초록이들은 이사와 동시에 2층 거실에 자리 잡은 뒤 거의 액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그들보다 훨씬 매력적인 푸른 잔디와 엄청나게 어르신 취향의 갖가지 나무(소나무, 화살촉 나무, 단풍나무, 철쭉 등)며 꽃들이 더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사 하기 전, 집안 내부에는 관심도 없고 마당만 파고 있는 나를 보며 내부 청소해 주시는 분은 이런 사람 처음 본다고 하셨다. “이미 다 만들어진 집을 들여다봐야 뭐함? 내 맘에 안 드는 정원이나 손보면 되는 거지?” 이상한 조합으로 심어놓은 갖가지 나무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땀 뻘뻘 흘리는데 그게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역시 초보는 어쩔 수 없는 법. 그 식물이 그렇게 크게 자라는지 몰랐다. 너무 빽빽하게 심어놔서 때에 맞춰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얹었다. 자투리땅은 농사짓기 싫어서 과실수를 몇 그루 사다 심었다. 대추랑 포포나무랑 체리 나무랑. 아니…. 내가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면 더 잘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단 말이야? 포포나무랑 체리나무는 두 그루씩 심어야 한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떨렁 한 그루씩 심어놔서 열매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정말 땅뙈기가 쬠만 더 넓었어도 한 그루씩 더 심는 건데. 얘네는 의도치 않게 고식이들이 되었다. 미안하다.

낙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담벼락 한 켠에 덩굴장미를 심기로 했다. 남편이 상의 없이 핑크색 장미를 주문해 심을 때부터 뭔가 일이 틀어졌다. 뭔 놈의 핑크! 내가 그 핑크 장미들 뽑아버리겠노라고 대노한 뒤 하얀색 장미를 다시 사서 심었는데. 아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야 하는 게 진리 아닌가? 하얀색 장미를 심었는데 왜 거기서 빨강과 노랑이 섞인 장미가 나오는 건지? 내 눈에만 빨강이야? 장미 사장님이랑 연인보다 더 많은 사진과 문자를 주고받은 끝에 결국 장미 시즌이 지난 후에야 다시 흰 장미를 받게 되었다. 하얀 장미 울타리를 꿈꿨던 나는 핑크와 빨강과 하얀 장미의 조화롭지 못한, 뭔가 퀼트 이불 같은 장미 울타리를 얻고야 말았다.

심기일전, 허브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특히, 보라색과 초록색 허브를 중점적으로 공략했다. 허브…. 내가 허브를 너무 얕봤다. 이렇게 뿌리가 강할 줄이야. 순식간에 번져버린다. 아니면 줄기가 마구마구 커진다!!! 나는 작은 허브 한 그루 심었을 뿐인데 거대한 허브가 꽃을 피우거나 향기를 내뿜거나. 메두사 머리 여럿을 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낭패다.

결국, 남편의 허리와 맞바꾼 정돈된 잔디만이 나의 마음에 평화를 주고. 그 주변으로 조성된 화단은 내 마음에 부채감을 준다. 하여 오늘도 나는 거실에 앉아 잘 깎인 푸릇푸릇 잔디만 보거나 그나마 봐줄 만 하게 꽃 피운 허브를 보거나, 다 그냥 스킵하고 바로! 구름 둥둥 흘러가는 하늘만 바라보거나…. 먼 산 내장산만 지그시 바라보거나…. 손을 대면 댈수록 수렁으로 빠지는 저 이상한 몰골의 화단은 자연의 섭리에 그냥 맡기기로 했다가도 다시 또 다른 마음을 먹는다.

‘자, 다음엔 저 땅덩이에 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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