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생 신화

by 우아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의 탄생을 지켜본 사람이 그 감동과 기쁨을 너무 충만하게 전달해 주어서 태어나던 사람이 마치 자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영화를 본 듯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아닐까.

나는 탄생 전날의 기억이 선명한 편이다. 뭐 어떤가. 나 스스로라도 탄생이라 말해주는 것이. 내 스스로 나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싶은 간절함이라 여겨주길 바란다. 어쩌면 내 상상력이 뛰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전달자가 뛰어난 스토리 텔러였을 수도 있고. 나는 영광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렇다. 그냥 병원이다. 산부인과가 아닌 병원. 침대가 아닌 방으로 된 병실에서 나를 처음 만났다 하니 어지간히 후진 병원이었나보다. 나는 한창 농번기인 양력 6월생이다. 내 고향은 고창 산골짜기이고. 내 아버지는 시골 농사꾼의 방 한 칸에 얹혀사는 철없는 막냇동생이었고.

모내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초산의 진통이 온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는데 그것은 내가 엄마의 소변 길을 야무지게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소변을 보지 못한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터질 것 같은 산통과 그보다 더 터질 것 같은 방광통으로 끙끙대고 있는데 농사일로 고됐던 아빠와 큰어머니는 벽에 기대어 졸고 계셨단다. 참을성 깊은 엄마는 거의 실신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영광의 일반 병원으로 옮겨졌고 터질 뻔한 방광을 구한 다음에서야 제대로 산통을 겪으셨다고 한다.

나는 자라면서 이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어렸을 때는 뭔가 특별하게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와 비슷한 레벨이라고 우길만하지 않은가. 형제가 여럿인데 그중 유일하게 내 탄생기만 모험담처럼 들려주시던 엄마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엄마의 방광은 괜찮은지 궁금해졌다. “엄마, 엄마의 방광은 괜찮아?” 한번은 물어 볼 걸. 모녀지간에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다. 나로 인해 엄마가 아픈 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을 테니까. 얼핏 스쳐 지나가던 원망의 눈빛 비슷한 회한의 눈빛을 어린 나이에도 잡아챘었고 아마도 엄마는 그때부터 평생의 불편함을 감내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고 내심 짐작만 하고 있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나는 나의 탄생 신화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그렇게 아파하는 사람 옆에서 잠이 왔대?” 아빠 탓도 해봤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빠들은 울며불며 난리던데 어떻게 첫딸을 맞이하는 데 잠이 올 수가 있지? 사람이 아프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지? 진짜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내 첫 아이를 낳는 날, 나는 6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엄마 꼴마니를 잡고 진통을 했다. 남편이 아닌 엄마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쌩으로 허리 진통을 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래도 너는 방광통은 안 겪으니 다행이다? 아닐걸? 그날 엄마는 아픈 다리로 꼬박 6시간을 서 계셨으니까. 연신 땀과 짜증과 눈물에 쩔은 실핏줄 팍팍 터진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내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야무지게 막아서 미안해 엄마” 나는 날 때부터 엄마에게 미안한 딸이 되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딸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나의 탄생 신화를 얘기해 주면서 한 번도 산통에 관한 얘기는 안 하셨기 때문이다. 오로지 방광통, 그 고통만을 얘기하셨다. 하…. 예뻤으니 다행이지 감자 마냥 못생겼으면 어쩔 뻔했나. 나의 탄생 신화는 그렇게 엄마의 고통과 인내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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