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탄다.

by 우아

차에 올라타는 아이의 얼굴빛이 파랗다. 날이 춥지도 않고, 그리 늦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 있었나?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다. 다행히 아이가 먼저 말문을 연다. 사춘기라도 말 많은 사춘기라 다행이다. 학원에서 막 나오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는 두 명의 형체가 꼭 그 아이들 같았다고. 그 형제들. 그 순간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휙 돌아 급히 걸었다고. 어색하게 보일까 봐 뛰지도 못하고 급히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가 마구 뛰었다고. 그 아이들이 다른 길로 간 걸 확인하고 엄마 차를 타러 왔다고 숨 가쁘게 내뱉는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아들, 왜 네가 그렇게 도망을 가니.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그리 급히 피했을까나. 그 몇 분이 얼마나 길고 두려웠을까. 하필 오늘 늦게 와서 미안’ 속으로 수십 마디 말이 튀어 나갔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클한 척 “괜찮아?” 한마디 한다. 아이도 애써 “괜찮아요.” 잠시의 정적 끝에 “근데 왜 네가 도망가~ 네가 도망갈 상황이 아니지. 그러지 마.” “그냥…. 마주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 만나서 좋을 건 없지. 그래도 맞짱 떠도 네가 이기니까 걱정마. 아들” 그날 밤, 아들은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사람마다 마음의 단단한 정도가 다르다. 내 큰아들은 마음이 참 무르다. 정도 많고 마음도 약하고 그래서 상처도 쉽게 받고 쉽게 아물지도 않는다. 내 아들이 친구로부터 받은 크나큰 상처가 아직도 시시때때로 벌어져 덧나고 다시 덧나는 걸 나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혼자서 부대끼고 있는 걸 보고 있기 참 힘들다. 세상을 더 많이 산 나도 때론 힘겨운 사람 사이를 겪지 않나. 그걸 이른 나이에 호되게 겪어버린 내 아들이 안쓰러우면서도 내가 어찌해 줄 수 없어 두고 볼 수밖에 없을 땐 참 생각이 많아진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서성일 땐 나보다 훨씬 두툼하고 커져 버린 손임에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잠들 때까지 잡아줄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뭇 사춘기 남자아이들과는 다른 사춘기를 겪는 것 같아 또 속상하다.

아이는 학교에 친구가 없다고 한다. 없는 것인지 안 만드는 것인지.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도 학교에서 어디라도 가게 되면 그 빈자리가 느껴지나 보다. 혼자인 걸 유독 이상하게 보는 게 우리 정서이지 않나. 혼자 앉아 있고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 먹고. “나는 괜찮은데? 남하고 같이 다니느라 기운 빼느니 혼자 그러는 게 훨씬 편하던데.” 하고 아들 편을 들어줘도 아들은 그래도 혼자가 아직은 낯설고 조금 무서운가 보다. 그러면서도 곁을 못 내주는 아들의 그 복잡한 마음. 이해가 가서 더 짠하다.

막연히, “언젠간 네 맘 같은 애가 나타날 거야. 걱정 마.” 미래를 꿈꾸지만 내 아들의 외로움이 길어지고 있어 보고 있는 내 두려움이 짙어지는 것 같아 무겁다. “야, 뭐 어떠냐? 엄마가 해 줄게~ 왜? 여자고 늙어서 싫으냐? 나중에 먹고 싶은 거 있을 때, 보고 싶은 거 있을 때, 가고 싶은 데 있을 때 그럴 때 불러내는 게 친구이면 그 때 나 불러! 내가 나가줄게. 근데 운동은 같이 못 해 주것다 그건 미안하네. 그건 동호회 들어!” 안 되는 것도 억지로 껴 맞추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애써 띄운다.

“좀만 기다려 봐. 네가 좀 더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지면 그때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낫지도 않은 상처 억지로 가린다고 되겠니? 잘 아문 후에 다시 도전해 보자. 기다려 보자 아들. 내가 같이 기다려 줄게.”

오늘도 머지않은 수학여행을 걱정하는 아들에게 어이없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면서 그 깊은 곳의 불안을 쓰다듬어주려 애쓰는 엄마의 애가 탄다. 아주 타탁타탁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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