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by 우아

내 나이 서른일곱의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선명한 칼라로 복숭아 꿈을 꿨다. 작은 마을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복숭아나무가 울타리처럼 심겨있었는데 그 많은 나무가 다 내 것이라 했다. 나무마다 뽀얀 분홍색에 주먹보다 크면서도 흠결 하나 없이 곱고 예쁜 복숭아가 주렁주렁 많이도 열려 있었다. 나는 ‘작은 아씨들’의 배쓰처럼 엔틱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그 예쁘면서도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따서 담았더랬다.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네이버를 켜고 해몽 사이트를 뒤졌다. 아들이었다. 크고 씨가 있는 열매는 아들. 나는 그렇게 2년의 휴직 후, 복직 반년 만에 셋째 아들을 얻었고 나의 인생 궤도는 막둥이를 기준으로 대폭 수정되었다.

명예퇴직의 꿈을 접었다. 정년퇴직해도 막둥이 대학 졸업을 할까 말까다. 물론 대학을 안 가주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지만 그래 놓고 집에 눌러앉아 있으면 더 곤란하기 때문에 대학까진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별로 달갑지 않았던 승진도 깔끔하게 접었다. 어차피 안 할 거였지만 확실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공교롭게도 나의 시댁은 교육자 집안으로 자꾸 현재진행형으로 교사가 배출되어 전현직 초중고 교육자가 10명이다. 그중 1인인 나는 동급계열 중에서 막내 시누와 단둘이서만 승진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였고 그것이 은근한 압박으로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하여 막둥이의 임신은 나에게 아주 좋은 핑계 카드가 되어 주었다. 셋째 임신이 좋은 점도 있긴 있었다.

육체적으로나마 편안할 수 있었던 40대를 접었다. 아이가 어리면 키우는 부모의 몸이 참 힘들다. 애가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대로, 걸으면 걷는 대로. 참 고되다. 게다가 부모가 노화를 겪기 시작하면 더욱 키우기 힘들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 한 가지. 아이가 유 초등생이 되었다고 편할 거라는 착각은 금물. 초등까지는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할 곳이 많다. 놀이공원, 과학관, 키즈카페, 도서관 등 아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물론, 옛 어르신들은 못마땅해하실 것이다. “애를 그렇게 키우면 안 돼~” 하지만 요즘엔 놀이터에 나가도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슬프다. 놀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야 한다. 나의 40대에는 셋째가 유아기부터 초등생일 거라 끝났다. 신체적 편안함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라도 편안하냐? 아닐 것이다. 첫째와 둘째의 사춘기를 겪을 것이라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리하여 38세에 셋째를 득남한 나는 오매불망 마흔다섯. 45살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막둥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 ‘그래도 초등학교에 입학이라도 하면 사람 같지.’ 여기서 위로가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나의 시어머니는 그 마흔다섯에 나의 남편을 늦둥이로 낳으셨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늦둥이가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고 둥가둥가 지지고 볶고 사는 모습까지 보고 가셨다.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까지 산다는 시대에 마흔다섯 그것쯤이야 아주 청춘 아닌가’ 하며 혼자 이랬다저랬다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흔다섯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다. 어찌나 느리고 느리고 느리게 오던지. 정말 시간이 나에게만 테이프 늘어지듯 늘어지는 것 같았다. 막둥이 태어나고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의 그 7년은 내게는 70년과도 같았다. 그 7년 동안 나는 삼 형제만 키운 것이 아니라 막둥이 3개월째부터 암 투병 중인 엄마도, 그 엄마에게만 의존하고 사시던 아빠도 함께 건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7년 동안 7명 몫의 삶을 사느라 정말 오래오래 너무 많이 사는 것 같았다.

드디어 막둥이 셋째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걸 한 3월! 드디어 막둥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감격을 누리며 ‘경축! 채삼식 님! 초등 입학!’ 느긋하게 모닝커피 한잔 마셔보기도 전에 나는 내 엄마도 잃었다. 내가 너무나도 마흔다섯을 간절히 기다려서인지 엄마는 내 나이 마흔다섯의 3월에 그렇게 훨훨 내 곁을 떠나셨다. 내 마흔다섯을 절대 잊지 못 하게 그렇게 그해에 멀리 떠나셨고 나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막둥이를 낳고 기대에 찬 꿈처럼 기다렸던 마흔다섯의 나이가 희미해지는 꿈처럼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해가 되어 버렸다. 결코 기대하지 않던 졸업이라는 결과를 받아버린 내 나이 마흔다섯은 그렇게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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