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편이다. 내 연령대에 비하면 그렇다. 키 큰 사람은 허리가 약하다고 들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교내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 한번 잘 못 하여 삐끗한 허리가 고3 시절부터 20대를 거쳐 30대까지 나를 힘들게 해왔었다.
첫 아이를 어렵게 임신한 후 기쁨의 태교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의학용어로 ‘환도 선다’라는 게 찾아왔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뭐 거의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벽을 짚고 이동해야 하는 고통과 두려움이 동반됐다. 그때 나는 주말부부였다. ‘혼자 있다가 크게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눈물겨운 산모였다.
그렇게 나는 부실한 허리로 아들을 낳고, 낳고, 또 낳았다. 모두 허리 진통으로 낳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았는데 아직 안 낳은 것 같은 허리 통증이 계속 있었다. 애는 셋이고~ 남편은 바쁘고~ 도와줄 사람은 없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내 몸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홀로 눈물 훔치는 날이 이어졌다. “그래! 내 몸은 내가 지켜야지!” 나는 여전사형이었다. 그래서 큰애와 작은애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겨우 7개월 된 막둥이를 데리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느니 차라리 집에 누워 있는 게 낫지 싶지만 그땐 참 간절했었다.
한의원에서 진료받기 위한 절차는 무척 까다롭고 복잡했다. 우선 아이를 아기띠로 안는다. 차에 가서 아기띠를 풀어 카시트에 내려 앉힌다. 운전을 한다. 한의원 앞에 주차를 한다. 트렁크에서 실내용 유모차를 꺼내 펼친다. 아이를 꺼내 유모차에 앉힌다. 그리고 한의원에 미리 데려다 놓는다. 차를 주차장에 주차한다. 한의원에 들어가 접수한다. 치료 시엔 유모차에 앉힌 아이를 한의원 이모들이 잠깐 봐주신다. 셋째 아들이라고 기호 3번이라고 이름표를 붙여주신다. 나름 귀엽다. 아이가 울 수 있으므로 찜질은 사양한다. 다시 반대의 일처리 과정을 거치고 집에 오면 된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러지 못하고 7개월 된 막둥이를 아기띠로 안고 주차장으로 바로 간다. 아이를 주차장에 있는 차 안 카시트에 앉힌다. 다시 돌아가 유모차를 가지고 와 유모차를 정리한다. 차에 탄다. 그리고... 운다. 어두컴컴한 주차장에 세워진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세상 서럽게 운다. 이것은 산후우울증이 아니다. 그냥 신세가 처량해서 우는 거다. 납득이 가는 이 상황에 화가 나고 서러워서 우는 거다. 하필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 엄마가 생각나서 우는 거다. 기호 3번은 그런 나를 보며 울상이다. “미안. 엄마도 슬픈 날이 있어.”
한참 쏟아내고 다시 운전하여 집으로 간다. 아이를 아기띠로 안는다. 치료받은 허리가 좀 나은 것 같이 산뜻하다. 쏟아낸 감정 덕에 마음도 조금 산뜻해진 것 같다. 병원에 계시는 엄마한테 산뜻한 목소리로 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사는 게 다 그렇지. 아프면 병원 가고, 슬프면 울고, 보고 싶으면 연락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사는 거 별거 있어?’ 마흔을 앞둔 나는 격하게 부대끼면서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땐 그랬었다.